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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 reviews

Run The Jewels - Jewel Runner 2015 Fall Tour in Michigan

tunikut 2015. 12. 21. 13:44



일시: 2015. 10. 24. 토요일 오후 8시 

장소: Royal Oak Music Theatre, Royal Oak, MI


내가 rtj의 데뷔 앨범을 몇년 전 여름에 무료 공개한 걸 다운 받아 들으면서 지하철 3호선 경찰병원역, 수서역, 일원역 사이를 바삐 오갈 때만 해도 나 스스로가 jewel runner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면전에서 특유의 손 제스쳐를 따라하며 그들의 음악에 맞춰 점프 점프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근데 그게 현실화됐다. 


더군다나 기적적인 건 이들의 올해 마지막 전미 투어 장소가 우리 동네, 미시간주 로얄 오크였다는 점 (정확히는 내가 사는 트로이에서 3-4마일 남쪽 동네지만 차로 15분 안팎이니 뭐...). 이건 꼭 가야해! 라고 생각한 나는 25불이라는 착한 가격을 주고 표를 예매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저녁, 이미 공연장 앞에는 우리나라에서처럼 긴 줄이 있었고, 나 역시 대부분이 코케이션이던 그 줄의 한 일부에 몸을 담았다. 


내 위치는 맨앞에서 바로 다음줄 스탠딩. 오프닝은 mass appeal 소속 신인 cuz lightyear. 트레이드마크라고 하는, 무슨 옛날 80년대 wwf 최강 태그팀 데몰리션이 쓰고 다니던 것 같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에요 디트로이트 메익 썸 노오오오오이이이즈~~~"라는 디제이의 샷아웃으로 공연은 시작됐다. 뭐 메인 무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관중들 리액션은 그냥 그냥.. 이어지는 fashawn. 난 첨에 누가 나오길래 그게 누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fashawn이었다는 것. 아마도 네임 밸류가 조금 더 있는 분이기 때문에 관중들은 약간 더 호응을 해줬는데 그래도 역시 우리나라 관중들보다는 썰렁한 느낌이었다. 아.. 미국 관객들은 역시 좀 이런가부다.. 역시 우리나라 관객들이 짱이라니까? 떼창에 말이지.. 그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암튼 dj fresh의 솔로잉(?)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fashawn의 무대가 끝났는데, 난데없이 el-p와 killer mike가 깜짝 등장했다. 관중들 완전 개난리. 마이크를 잡고 "야 오늘이 우리 생일이야. 정확히 1년 전 오늘 rtj2 발매됐거덩" 이러는데 난 그 소리 별로 들리지 않았고, 완전 개난리 치는 관중들을 보면서 '니들 심리 상태 다 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거만한 미소를 띠우던 엘피의 표정만이 나로 하여금 '어머멋져'의 반응을 유도했다. 이윽고 BOOTS가 나와서 몽환적인 락-일렉트로닉-아방가르드를 넘나드는 무대를 보여줬는데 솔직히 음악은 되게 좋았지만 관중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내기는 부족했다. 그 무대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이는 바로 BOOTS 그 자신이었다. 


이윽고 약 40여분 가량 이어지는 지루한 사운드 체크가 시작됐다. 무대 장치들이 바뀌고.. 뒷쪽 현수박을 걷어내니 RUN THE JEWELS라는 특유의 빗발치는 것 같은 로고가 또렷이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리를 샬리마가 나오는 걸 보니 이제 올것이 왔구나 싶었다. 불이 꺼지니 다시 관중들 개난리. 


"아 씨발 디트로이트!!!!!!!!"


한 마디에 관중들 개거품 물었다. 근데 정확히 말하면 여긴 로얄 오크지 디트로이트가 아니다. 물론 디트로이트 위성 도시 정도 되지만 정확히 진짜 우리가 "디트로이트"라고 말하려면 내가 일하는 다운타운쪽으로 lovely i-75를 타고 더 내려가야 된다. 디트로이트강 가까이 다운타운에서 남서쪽 떨어진 그 텅비고 황량한 마을들을 봐야 여기가 진짜 디트로이트지.. 라고 말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니면 최소한 에미넴 고향 8마일-7마일 근처나 사우스필드 정도는 돼야..) 솔직히 오늘 여기 온 관중들은 거의 다 백인들. 괜찮은 동네인 로얄 오크에 몰려 살고 있는 피치포크류 힙스터들이지, 진짜 처절하고 거친 디트로이트 모터 씨티의 애프로-어메리칸 소시민들이 아니라는 것. 암튼. 잠시 딴데로 샜다. 


퀸의 we are the champions를 다 같이 열창하며 드디어 jaime와 mike가 등장했다. 장중한 분위기와 함께 관중들과의 떼창이 끝났다. 난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몇초 후 내가 어떤 상황을 맞닥드리게 될 거라는 걸.. we are the champions가 끝남과 동시에 익숙한 run the jewels의 인트로가 들린다. 아.. 아.. 안돼.. 안돼.. 잠깐만.. 잠깐.. 나 아직 준비가 안됐단 말이야.. 이러고 있는데 이미 "땅땅따당..." 비트가 시작되면서 엘피와 킬러마익은 "에이! 에이! 에이! 에이!" 이러고 있다. 내 옆의 관중들? 


자, 그래. 내가 이제 말해주겠다. '미국 본토'의, '힙합' 공연의, '스탠딩'의, '맨 앞'에서 관람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이미 비트가 터지자, 이건 더 이상 (우리가 여지껏 생각하는) 정상적인 공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래도 뛰거나 손을 들거나 하면서 '공연을 관람'하지 않나? 여기? 그런 거 없다. 그 순간 부터 플로어는 공연하는 사람이나 관중들이나 상관없이 다 같이 '개지랄'을 시작한다. 내가 뛰면서 옆에 누구 발을 밟는 지도, 내 앞에 누가 뛰면서 내 가슴을 치는지도, 내 옆의 어떤 여자의 가슴과 내가 부딫치는 지도, 앞의 가수가 어디로 움직이는 지도.. 파악이 안된다.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격렬하게 점핑을 하면서 서로 부딫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같이 아수라장이 되버리는데! 이야.... 이게 진짜... 이게 진짜구나. 싶었다.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녹화하는 것도 별로 없다. 사람들은 그 시간도 아까운 거다. 그냥 오늘 날 만났다는 생각에 다 같이 미친개지랄을 떨어보자는 충실한 goal을 향하는 것 같았다. 


나? 순간 '어이 씨발 이거 뭐지' 했다가 엘피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키큰 건장한 코케이션들 사이에 파묻혀 (내 키도 작은 키는 아니다 177이다) 제대로 카메라에 담기도 어렵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에라 씨발 나도 모르겠다' 하고는 휴대폰을 바지 춤에 넣어버리고 나 역시도 개지랄을 떨기 시작했다. 첫곡 "run the jewels"가 끝나자 쉴틈도 없이 곧바로 "oh my darling"의 인트로가 나오는데 내 옆에 어떤 백인 언니의 한마디를 난 그 순간 분명히 들었다. "oh my god...." 그렇다. 그 omg에 담긴 뜻을 해석하자면 이거다. "야.. run the jewels로 뛰느라 벌써 에너지 다 써버렸는데 곧바로 oh my darling이 나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또 뛰어야 되자나.." 그래 우린 oh my darling과 함께 또 개지랄을 했다. 거기서 끝나고 잠깐 쉴 줄 알았다. 근데 씨발 다음곡은 "blockbuster night pt 1"이다. 이거 어쩌라는 거냐. 벌써 체력 다 바닥 났는데 이 상황에서 이 곡이 나오면 어쩌라고.. 날 죽일 셈이냐.. 뭐 어쩔 수 없었다. 또 뛰면서 지랄발광을 했다. 이미 첫 3곡에 나를 포함한 모든 관중들, 심지어 el-p와 killer mike도 다같이 지랄 하느라 힘들어보였다. 이미 모두 넉다운 상태. 근데 피도 눈물도 없는 dj little shalimar는 다음곡을 잭 델 라 로차의 코러스로 시작하는 close your eyes로 선택을 해버렸다. 이제부터는 el-p, killer mike, 그리고 모든 관중들에게는 고문의 시간이었다. 이미 첫 4곡에서 거의 실신 상태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아 이제 그만.. 아 이제 그만.. 그러는 상황에서. 잠시 쉬어가는 타임. 짧은 멘트와 함께 약간 미디움 템포의 ddfh를 들려주면서 잠시 진정의 시간을 가졌다. (난 분명히 봤다. el-p와 killer mike도 첫 4곡을 거치면서 에너지를 다 쓴듯 헐떡헐떡거리는 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날이 정확히 rtj2 1주년 되는 기념일이고, 또 US 투어의 마지막날이였기 때문에 아마도 이들은 더더욱 열정을 보인 것 같았고, 이 날 이 곳에 모인 관중들은 정말로 행운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el-p와 killer mike은 디트로이트 출신 뮤지션들에 대한 shout-out을 했는데 특히 j dilla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했다. killer mike가 j dilla!를 외치면 el-p가 slum village를 외치고, mike가 black milk를 외치면 el-p가 danny drown을 외치는 식이었다. 특히 christmas fucking miracle을 부르기 직전에 rest in peace j dilla & proof를 외치던 광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모든 정해진 셋리스트가 끝나고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1주년 생일을 기념하며 cuz lightyear, fashawn, dj fresh 및 모든 크루들이 모두 나와 다같이 happy birthday를 부르기도 했다. (nas는 안왔다) killer mike은 엘피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정하며 둘은 포옹을 했고, 포옹이 끝나자 mike가 el-p의 머리 위에 샴페인을 통째로 부어버리더니 막 지들끼리 서로 샴페인 뿌리면서 공연장은 또한번 아수라장이 됐다. 이윽고 모든 크루들이 다 어우러진 엔딩 엥콜곡을 부르면서 이 개지랄아수라장 같았던 공연은 끝이 났고, (이후 3일간 계속됐던) 먹먹한 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점점 먹을 수록 auricular hair cell들의 regeneration 속도가 더딘가부다)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날밤 난, 다른날보다도 더더욱 특별했던, 그들의 2집 1주년 생일날이자, 전미투어 마지막 날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영광스런 jewel runner 중 하나였다고. 



워낙에 지랄발광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안흔들린 사진으로다가 하나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