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concert reviews

DJ Spooky/Shawn Moore/이기화/이미지 쇼케이스

tunikut 2014. 1. 12. 00:25



일시: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오후 8시 

장소: 종로 반쥴 샬레 



이런 기분을 '황홀하다'라고 표현하나보다. 어느 공연을 보고 나서든 집에 오는 길에 드는 느낌이 다 그렇다곤 하지만 오늘만큼은 유난히도 황홀했다. 디제이 스푸키. 내가 이 분을 알게 된지도 정말 오래된 것 같다. '일렉트로닉 뮤직'이라는 게 처음 음악 매니아들 사이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90년대 후반부터니 말이다. 스푸키에 대한 얘기는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생략한다. 그저 딱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일비언트 (ill = hip hop + ambient)라는 음악 스타일의 창시자이며, 힙합을 기본으로 앰비언트-일렉트로닉 뮤직을 맛깔나게 퓨젼시키는 디제이였지만, 최근에는 단순한 뮤지션의 영역을 넘어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클래식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프로젝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분이다. 


요 몇달 동안 스푸키는 서울예대와의 프로젝트 활동을 위해 서울에 거주하며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 연말에는 DJ 파티를 하기도 했다. 뭐 이 공연이든 저 공연이든 '이 분'이 한다는 공연은 무조건적으로 보고 싶은 게 사실이지만 (사실 이 분 오늘밤에도 DJ mix set 하신다. soulscape하고 같이. 그러니까 두 탕 뛰시는 셈.), 특히나 특히나 내가 정말 정말 보고 싶었던 이 분 공연이 '즉흥음악' 공연이었는데 오늘 정말 아다리가 딱 맞아서 이 소중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혼자 보기 정말 아까운, 정말 어디서 함부로 볼 수 없는 '진귀한' 연주들이었다. 


공연의 기본 레파토리는 스푸키형 특유의, 아이패드를 이용한 가상 턴테이블 연주에, 바이올리니스트 숀 무어와 하피스트 이기화씨가 즉흥 연주를 하는 것이고, 최근 스푸키가 국내에 거주하면서 리믹스 작업을 한 인디싱어송라이터 이미지씨가 featuring하는 구성이었다. 


공연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구분이 되었는데, 첫번째 파트는 스푸키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숀 무어와 이기화씨의 단독 혹은 콜라보 연주로 이루어진, 비교적 클래시컬한 느낌의 공연이었고, 두번째 파트는 곧 발매될 리믹스 싱글에 수록될 곡을 싱어 이미지씨와 스푸키가 미리 선보이는 무대였다. 리믹스 첫곡은 전형적인 스푸키 스타일의 앰비언트풍 브레익비트 넘버였고, 이어지는 곡은 레게잼 스타일의 곡이었다. 다소 팝적인 느낌이었기 때문에 스푸키 스타일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랬다. (앨범이 나와서 들어봐야 알 수 있을 듯.) 그 다음으로 이미지씨는 "이건 리믹스곡들이라서 이렇고 원래 내가 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겠다."라고 하며, 어쿠스틱 기타를 둘러매고 앉아 멜랑콜리한 모던락 두 곡을 들려줬다. 



이미지씨의 휘쳐링 공연, 스푸키와 숀 무어가 서포트해줬다. 



이어지는 마지막 세번째 파트가 본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스푸키-숀 무어-이기화 트리오 무대였다. 세 곡을 들려줬는데, 첫 곡은 내가 스푸키 공연에서 가장 기대했던, 오늘 이 공연장에 온 이유가 되었던 아방가르드-임프로바이즈 셋이었는데, 약 5분여 동안 무아지경에 빠질 만큼의 멋진 연주였다. 스푸키 특유의 불길한 앰비언트에 특히 하피스트 이기화씨의 전위적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다음 곡 역시 인상적인 블루스 넘버였는데, 스푸키가 블루스 비트를 깔아주고 나머지 두 분이 여기에 맞춰 연주를 하는 식이었는데, 바이올린과 하프를 이용해 블루스를 연주한다는 그 자체가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마지막곡은 아니나다를까, 요새 스푸키형이 가장 밀고 있는 덥스텝 장르의 곡으로, 이 곡 나오면서는 난 사진 찍는 걸 그만 두고 눈을 감고 덥스텝 비트에 자연스레 몸을 던져버렸다. 아.. 정말 좋았다. 



세 분의 환상적인 트리오 즉흥 연주!



자, 하일라이트는 지금부터다. 공연이 끝나고 카페 쇼케이스라는 게 그렇 듯이, 관객 뮤지션이 그냥 하나가 되어 서서 수다떠는 분위기로 바뀌었는데, 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스푸키형에게 들고간 씨디 부클릿을 내밀었고, 스푸키형은 그걸 가져온 내가 놀랍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싸인들을 해줬는데, 이름이 뭐냐.. 그러면서 이름까지 써주고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평소 트위터에서 보던 이미지 그대로, 사진에서 느낀 이미지 그대로 안그래도 되게 친절해보였는데 실제론 정말 장난 아니더라. 난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졸라게 shy한 성격이라서 약간 얼어서, 그냥 싸인만 띡 받고 가려고 했는데 스푸키형이 아예 나랑 마주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는 거였다. 


나: 난 사실 존나 힙합팬이야 형. 그리고 앰비언트나 테크노도 존나 좋아해.

스푸키: 사실 이 공연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오늘 밤에 다른 공연이 또 있어. 졸라 힙합스러울 거야. 그나저나 오늘 공연 괜찮았어?

나: 어메이징했어 형. 난 사실 그리고 또 즉흥음악-실험음악도 존나 좋아해 형. 그래서 오늘 공연도 졸라 좋았어. 


그러던 중 옆에 어떤 여자가 스푸키형한테 다가온다. 즉석에서 세 사람이 대담을 나누는 분위기가 됐고, 스푸키형이 그 여자한테 여기 '범수'라는 친구 있다고 날 소개까지 해준다. 그러면서 내가 들고간 씨디 보면서 이건 어떤 씨디고 저건 어떤 씨디고 하면서 또 chat을 했다. 한 가지 정보는, 스푸키형이 최근 여기저기 미술관 등의 residency로 활동하면서 만든 음악들을 박스셋 형식으로 발매할 거라는 것. 이거 존나 대박 정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씨디들이 이 일환으로 발매된 리미티드 에디션들이었으니까. 암튼 그렇게 완전 난 그냥 자연스럽게 스푸키형과 마치 파티장에 온 것처럼 서서 얘기를 했고, 스푸키형이 나보고 '오늘 밤에 같이 조인할래? 같이 놀거야?' 그랬는데 순간 약간 당황하면서 잠깐 생각했다. 분명히 여기 이렇게 좀더 서있으면 스푸키형과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서 자고 있을 아내와 우리 '자슥'들을 생각하고 스푸키형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딱 나서자마자, '아 씨발! 그 좋은 분위기에서 왜 내가 기념사진 조차 한방 안찍었을까..' 그러면서 다시 들어가 스푸키형에게 사진 한방 같이 박자고 할까 하다가 없어보일 것 같아서 그냥 [엔터 더 우탱] 들으면서 집으로 왔다. 스푸키형, 존나 고마워! 존나 멋져 형!



언제나 공연을 보고나서 훈장처럼 생기는 autographed CD bookle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