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official drafts

Barry White [Stone Gon'] (1973, PolyGram/Mercury)

tunikut 2010. 12. 28. 10:03



  소울이 뭡니까. 뭐 저도 문화학자가 아니라서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소울을 우리말로 표현해본다면 ' +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윈디 씨티의 김반장씨는 인터뷰에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나한테 잘해주는 게 소울"이라고 했는데 저도 그 의미에 공감합니다. 보이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 배려하는 마음, ' 그게 '소울'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대부분의 우리가 알고 있는 70년대 소울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꼭 절정부에서 목을 쥐어 짜며 데쓰메탈도 아닌데 거의 그로울링에 가까운 샤우팅 창법을 들려준다는 거죠. 그게 뭐예요. 바로 '진심'이라는 거죠. 내 진심을 제발 좀 알아달라.. 갑갑한 마음에 가슴을 후려치며 냅다 내지르는 그 감수성.. 그게 소울 아닐까요. 영화 "드림걸즈"에서 중반부에 제이미 폭스가 제니퍼 허드슨을 떠나자 텅빈 스테이지에서 거의 졸도할 정도로 숨넘어갈 듯이 목을 쥐어짜며 노래를 부르는 제니퍼 허드슨의 그 모습. 전 그게 '소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뭡니까. 혹자는 노래 가사에 사랑 얘기가 나오면 "맨날 사랑 타령만 한다"고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엔 힙합 가사에 사랑 얘기가 나오면 힙합이 아니라는 웃지 못할 논쟁이 있었던 적도 있죠. 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저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은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커리어도 이념도 종교도 심지어는 돈도 말이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 뿌리칠 수 없는 사랑에 중독돼서 괴로워본 적이 있습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술에 취해 빙빙 도는 방안에서 뒹굴어보고 어둡고 빨간 술집의 싸이키 조명 아래서 빨개지도록 눈을 비벼본 적 있습니까. 만취한 상태에서 공중 전화기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 앉아 밤새도록 울어본 적 있습니까. 그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변기통을 부여잡아본 적 있습니까. 머리는 깨지도록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속은 계속 울렁거리고 하늘은 노랗고 신물이 계속 올라와 기도를 자극해서 계속 콜록거리고 코도 찡찡거리고.. 모두 사랑 때문인 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잠시나마 그 드라마 속으로 당신을 초대하는 티켓을 들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Barry White입니다.

 

 

1. Girl It's True, Yes I'll Always Love You

2. Honey Please, Can't Ya See

3. You're My Baby

4. Hard To Believe That I Found You

5. Never Never Gonna Give Ya Up

  

 

  오늘 들고 나온 앨범은 Barry White의 두번째 앨범 "Stone Gon'"입니다. 대부분의 음악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훼이버릿 소울 아티스트'가 있죠.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아티스트.. 혹자는 Al Green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Luther Vandross라고도 하고 혹자는 Stevie Wonder, Marvin Gaye, Ray Charles 등등.. 하지만 제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소울 아티스트는 바로 Barry White입니다. 아쉽게도 이 분 역시 지금은 작고하셨죠. "배리 화이트! 배리 화이트도 원래 갱단 출신이었어요!" 제가 배리 화이트라는 가수에 대해 알게 된 건 바로 영화 "식스틴 블럭"의 종반부에서 Mos Def이 브루스 윌리스에게 외치던 저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됐죠. 이분은 소울 음악 역사 속에서도 상당히 아이러닉한 분이셨는데요, 체구로 치자면 그 어떤 역대 뮤지션들과 비교해도 최고의 '풍채'를 자랑하셨으면서도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포스'는 언제나 '오야봉'의 이미지를 풍기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역설적인 건 그렇게 강력한 포스를 풍기는 외모와는 반대로 언제나 감미롭고 로맨틱한 '사랑 노래'만을 고집하셨다는 겁니다. 근데 말이죠, 이 분이 들려줬던 사랑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유치하다거나 경박하다거나 그런 느낌이 절대 안들어요. 상상을 해봅시다. 어떤 조직의 최고 보스가 한 여인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 여인에게 모든 걸 다 베풀어줄 정도로 로맨틱합니다. 그 모습이 어떤가요? 적어도 유치하다는 생각은 안들죠? 반대로 대부분 그 보스를 두고 '멋있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바로 그런 이미지가 Barry White의 사랑 노래에서 느껴진다는 거죠. 그만의 '간지'라고나 할까요?

 

  또 이분의 음악적 커리어가 아이러닉한 것 중에 하나는 '소울/알앤비' 중에서도 매우 멜로우하고 감미로운 스타일을 추구하셨음에도 하우스/댄스 뮤직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하우스 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이름이 Donna Summer와 바로 이분 배리 화이트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Donna Summer와 함께 2004년 개최된 "The Dance Music Hall of Fame" 첫회 헌액자가 됩니다. 이 분은 원래 가수가 아니라 'producer/arranger'로서 커리어를 시작하셔서 Love Unlimited라는 '걸그룹'도 제작하고 막 그러시다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하셨는데 그 경력 답게 대부분의 앨범들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 편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도맡아 하셨죠. '소울계의 길 에반스라고나?'

 

  자 이제 앨범을 플레이해봅니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 서정적인 현악음, 그리고 간간히 울리는 색스. 그 위에 잔잔한 독백. "It's all in your eyes.." 소파에 누운 여인의 머리 맡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운 남자가 조용히 독백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6박자의 블루지한 드럼이 가세하면서 동시에 현악 연주 톤이 바뀌며 분위기는 고조됩니다. 독백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로 이어지고 후반부 절정에 달했을 때 결국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화이트의 보컬이 터지네요. 이를 반주하는 현악음 심포니는 같이 절정에 치닫습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연주의 싸이키델리아.. 바로 첫곡 "Girl It's True, Yes I'll Always Love You"입니다. 이분의 음악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이 '독백 나레이션'인데요, 독백과 노래의 구분이 모호하며 독백 자체가 때로는 노래보다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또 상당히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는 독백 중에 오케스트라 반주의 변화를 줘서 그 자체로 굉장히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거죠. 또 독백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로 이어지며 이때 역시 또 한번 변주되는 식으로, 곡 하나에 기승전결이 느껴진다는 건데 이 모든 요소들을 적시적소에 어레인지시키는 그만의 감각은 정말 천재적입니다. '실력'이라기보단 '감각'이죠 이런 건..

 

  계속해서 들어봅시다. 이어지는 "Honey Please, Can't Ya See"는 가볍고 활기찬 느낌의 미드 템포 오케스트라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초원을 걷는 기분이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을 통해 난 구원을 얻었고 나에게 준 선물이고 나를 새롭게 만들었다. 끝이 없는 세상에서 길을 잃었지만 니가 나에게 왔다..며 즐거워 합니다. 다음 곡 "You're My Baby"는 앨범 내 가장 싸이키델릭한 곡인데요, 제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너무 사랑해서 술에 진탕 취해 방에 누워 핑핑 도는 천장을 바라보는 분위기.. 헤어질 위기에 있는 남자가 "You're my baby"라고 계속 반복합니다. 그러면 현악 반주는 이 남자의 노래를 놓치지 않고 그 멜로디를 따라오면서 그 다음 드라마틱하게 따라붙는 기타 멜로디가 듣는 이의 가슴을 막 부여잡고 싶게 만들죠. 이어지는 "Hard To Believe That I Found You"는 요새 흔히 말하는 슬로우잼 스타일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느릿느릿한 비트와 키보드음, 그리고 계속 말하지만 독백 중에 갑자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연주가 광장히 드라마틱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이윽고 이어지는 노래. 그리고 또 반전되는 연주. 마치 주고 받듯이..

 

  자 그러다보면 어느덧 앨범의 마지막곡이자 그의 최대의 히트곡 중에 하나인 "Never Never Gonna Give Ya Up"이 나옵니다. 여러분, 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의 인트로가 충격적이었다구요? Beck "Loser"의 인트로가 인상적이었다구요? 그렇지만 이 곡의 인트로 역시 여타 인트로가 인상적이라고 하는 곡들에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들어본 수많은 곡들 중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빠른 드럼 터치 "툭ㅊ 툭ㅊ 툭ㅊ 툭ㅊ" , 점차 고조되며 신경을 자극하는 현악음 "쭈이이이이이이~", 한숨 소리 "수으으으으읍!" 그렇게 머리 꼭대기 끝까지 텐션이 극에 달했을 때 일순간 "!~~" 신음 소리 터지면서 동시에 쿵! 두들기는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이어지는 신경질적으로 세게 두들기는 킥-스네어 브레익비트, 거기에 엮여 돌아가는 베이스 그루브.. 참았다가 발산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표현하는 느낄이랄까요. 또 강력한 스네어 드럼 소리에 어우러져 "절대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절대 멈추지 않겠어!"라고 힘줘서 발음하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 저처럼 나약한 간꽁치같은 청자에게 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 앨범은 비록 다섯 곡밖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앨범은 아닌 것 같아요. 앨범을 굉장히 통합적으로 느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노래 따로 독백 따로 가사 따로 연주 따로 이게 절대 아니라는 거죠. 이 네 요소가 서로 긴장과 균형을 이루면서 마치 주고 받듯이 적절한 변박과 변주를 통해 굉장히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저도 그랬지만) 반드시 반복 청취를 권유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을 들으면 마치 오래된 영화의 로맨틱한 라스트씬이 연상되자나요. 바로 그 로맨틱하면서 뭔가 애절한 분위기가 '소울'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장르와 결합하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the most romantic and dramatic tune'이 나오는 것 같아요. '소울 진액'이 너무 진해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사이키델릭을 만들어내는 Barry White는 진정한 천재 음악가이자 '소울왕(king of soul)'이 아닐까요. 이 차가운 계절에 잘 어울리는 그의 음악을 한번 느껴보시는 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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