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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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Spinna [Here To There] (2002, BBE)

tunikut 2011. 1. 3. 11:36

  '차트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퇴물'이라는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은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럼 차트 1위 못하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도 거장 아니자나요? 퇴물이지..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요? 할인마트 시식 코너에서 먹고 싶어서 먹었으면서 괜히 진지한 표정으로 "괜찮네.." 그러면서 맛 음미해보는 사람들처럼 (최효종 톤으로)

 

  오늘 이야기 하는 DJ Spinna도 역시 그럼 그런 기준이라면 '퇴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그 출중한 감각과 실력에 비해서 10년 동안을 철저하게 '언더그라운드'만을 고집해왔기 때문이죠. Jigmastas Polyrhythm Addicts라는 걸출한 언더그라운드팀을 거쳐 여타 엠씨들의 프로듀싱과 솔로 활동으로, 또 그외 여러 다른 프로젝트로 그는 언제나 바쁩니다. 최근에는 "Underground Forever"라는 의미심장한 타이틀의 믹스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었죠. , 오늘 들고 나온 앨범은 다들 잘 아시는 BBE 레이블의 비트 제너레이션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매된 "Here To There"입니다.



 


01. Alfonso's Thang (featuring Ticklah & Alfonso Greer)

02. Drive (featuring Shadowman from OldWorldDisorder)

03. Hold (featuring Apani B. Fly & Jean Grae)

04. Tune You Out (featuring Rise)

05. Galactic Soul

06. Idols (featuring Vinia Mojica)

07. All Up In It (featuring Eric Krasno & Neal Evans from Soulive)

08. You Got To Live (featuring Jigmastas & Akil)

09. Surely (featuring Ovasoul7)

10. Rock (Unplugged) (featuring Tortured Soul)

11. Fly Or Burn (featuring The Bedouin)

12. Glad You're Mine (featuring Angela Johnson)

13. Love Is Solid (featuring Abdul Shyllon)

14. Music In Me (Interlude)

15. Music In Me (Come Alive) (featuring Shaun Escoffery)

16. The Originator

 

 

  BBE는 원래 영국의 하우스 레이블이었죠. Masters At Work라는 하우스씬의 거장이 소속된 레이블이 바로 BBE였습니다. 근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 레이블이 갑자기 힙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비트 제너레이션' 시리즈를 런칭했고 이 시리즈들을 통해 'instrumental hip hop'이 여러 리스너들에게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으며 '비트메이커/프로듀서'들 하나하나의 음악에 대해 많은 관심이 일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실 이런 식의 instrumental hip hop 90년대 중후반에 이미 DJ Shadow/DJ Krush/DJ Spooky로 대표되던, 유럽 댄스뮤직씬의 브레익비트/드럼앤베이스의 자양분을 받아 엠씨들을 위한 프로듀서로서의 역할보다는 스스로의 '솔로곡'들을 만들던 뮤지션들에 의해 몇몇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회자가 됐었지만, 본격적으로 본토나 우리나라나 일반 힙합팬들에게 '인스트루멘틀 힙합'을 널리 알리게 만든 계기로서 '비트 제너레이션 시리즈'는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Soul Survivor"만 만들던 Pete Rock "PeteStrumentals" 같은 걸 발표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자, 그럼 여러분은 비트 제너레이션 시리즈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하세요? 예예.. "PeteStrumentals". ? , "Welcome 2 Detroit". 또요? "Lost Change". "The Magnificent". 예예 알겠습니다. 맞아요. 주로 위에 열거한 앨범들이 가장 인기를 끈 작품들이었죠. 근데 이상하게도 DJ Spinna "Here To There"는 그닥 회자되는 걸 못봤어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위에 열거한 시리즈 모두를 들어봤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앨범은 바로 이 "Here To There"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전 "PeteStrumentals"가 제일 별로임..) 

 

  지금 활동하고 있는 DJ Spinna의 음악 스타일을 한마디로 얘기하긴 아주 어렵죠. 마치 Madlib 처럼요. 힙합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70년대 소울//디스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때론 일렉트로닉-하우스 스타일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근데 제 생각엔 말이예요, 그런 그의 다양한 스펙트럼들을 최초로 시도한 앨범이 바로 이 "Here To There"가 아닐까 싶어요. 이 앨범은 그의 솔로작으로서는 "Compositions 1", "Heavy Beats Volume 1"에 이은 세번째 작품인데요, 그 이전의 앨범이나 활동들이 말씀드렸다시피 Jigmastas Polyrhythm Addicts 같은 힙합팀의 프로듀서와 'Rawkus boom'에 동참했던 힙합 비트메이커로서였다면 이 앨범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과 그만의 개성을 보여준다는 거죠.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 참 '공을 많이 들인' 앨범 같다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스스로는 MPC-3000 SP-1200을 가지고 비트를 만들고 있지만 여러 게스트 세션들을 초빙해서 베이스, 올갠, 클라비넷, 기타, 드럼 등 리얼 연주를 풍부하게 들려주며 여기에 '디제이'로서의 그답게 스크래칭 세션까지 가미해서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참 꽉찬 느낌을 준다는 거예요. 그럼 이런 구성을 가지고 그가 어떤 음악을 들려주는지 하나하나씩 봅시다.

 

  우선 그가 들려주는 비트 역시도 간단한 힙합브레익은 아닙니다. 1-2-3-4 구조에서 악센트를 다르게 줌으로써 색다른 그루브감을 느끼게 해주는데요, 오프닝곡인 "Alfonso's Thang" 같은 경우엔 2-3-4에 균일하게 악센트를 줘서 Alfonso Greer shout out과 어울려 느릿느릿 스텝을 밟는 듯한 리듬감을 준다면 이어지는 힙합 트랙 "Drive" "Hold"에서는 2 4에 강세를 줘서 전형적인 힙합 그루브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Surely""Glad You're Mine"과 같은 멜로우한 알앤비 스타일의 곡들에서는 1 3에 악센트를 줘서 ( James Brown옹께서 최초로 이 비트를 발명했다고 하는데..) 업템포 알앤비 특유의 댄서블한 바운스를 느끼게 하네요. 한편 "Galactic Soul"에서는 오프비트의 엇박을 사용해 마치 J Dilla의 환영이 느껴지기도 하며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 "Idols"에서는 블루지한 6/8박자 리듬 가운데 중간 중간 1-3에 강세를 준 알앤비 스타일의 비트로 과감한 변박을 시도해서 꽤 전위적인 가운데서도 바운스감을 느껴지게 합니다. "Music In Me (Come Alive)"에 가서는 전형적인 포온더플로어 하우스 비트로 이 앨범이 BBE에서 나왔다는 걸 다시금 리마인드시켜주기도 하네요. (이 곡에선 Ronny Jordan이 전혀 존재감 없는 기타 연주를 들여줍니다.)

 

  하지만 이 앨범이 멋진 이유는 이렇듯 다양한 비트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꽉찬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특히 Moog를 이용한 레트로 성향의 소리들은 여타 힙합 앨범들에선 쉽사리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이며, 60-70년대 소울 음악에서 들려지던 특유의 '삐용 삐용' 거리는, 왠지 향수가 느껴지게 하는 신디사이저음들도 앨범 전체적인 분위기를 상당히 빈티지하게 만들고 있죠. 또 어반/퓨젼 밴드 Soulive Eric Krasno Neal Evans가 참여하여 각각 기타와 하몬드 올갠을 연주해 DJ Spinna feat. Soulive라기 보단 Soulive feat. DJ Spinna에 가까운 "All Up In It"이나 하우스 밴드 Tortured Soul이 참여한 "Rock (Unplugged)"에서의 리얼 연주가 중심이 된 업템포 훵사운드는 도저히 듣는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게 만듭니다. 그 사이사이 감초처럼 뿌려지는 DJ Spinna의 스크래칭 세션은 최고의 ''이구요. 그런가하면 "Fly Or Burn" 같은 트랙에서는 느릿느릿 블루지한 비트에 싸이키델릭 기타를 가미해서 시사성 강한 poetry slamming을 보조하고 있구요, 마지막 트랙 "The Originator"에서는 아프리칸 리듬을 차용해 "드럼은 아프리카에서 발명했다. 드럼이 없으면 힙합도 재즈도 블루스도 컨트리 뮤직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마치 Nas & Damian Marley "Distant Relatives" 앨범의 메세지를 연상케하는 나레이션도 등장합니다. 

 

  이렇듯 이 앨범은 단순한 '힙합 프로듀싱' 앨범이라기 보단, '흑인음악'이라는 범주 안에서 DJ Spinna 본인이 혼자서, 혹은 여러 게스트들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이토록 '다양한 사운드'가 관점에 따라선 일관성이나 균질성 없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들이 '난잡'하게 나열됐다는 느낌보다는 특정한 흐름을 가지고 비트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생각이 들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듣는 순간 감이 팍 오는 킬링 트랙들이 중간 중간 포진돼 있기 때문에 듣기에 전혀 지루함이 없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앨범은.. "PeteStrumentals" 같은 균질한 작품은 아니지만, "Welcome 2 Detroit" 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하이브리드 뮤직을, "Lost Change"에서 처럼 세션 연주를 곁들여서, "The Magnificent"에서와 유사한 곡 배치를 해놓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Originally posted on: http://blog.naver.com/blogmiller/110099806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