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케이블티비를 돌리다보면 아이넷(i-net)이라는 채널이 있다. 이 채널은 항상 무슨 공연 실황을 보여주는데
100% '옛날 (트롯) 가수' 혹은 '무명 트롯가수'들이 나와서 무슨 시민회관같은 데서 100%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서 채널을 쭉 올라갔다가 쭉 내려오는 케이블티비질 중에서도 나로 하여금 그 머무르는 시간에 있어 최단기간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채널이다.
근데 며칠전에 하도 볼 게 없어 돌리다가 사랑과 평화의 공연을 이 채널에서 하는 걸 보고 바로 꽂혀서 계속 봤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DJ'였던 김기덕과 더불어 '대한민국 최고의 MC'였던 이택림 아저씨께서 사회를 보는 프로그램
이었다. 물론 관객은 그야말로 100% 아줌마들.. 난 솔직히 사랑과 평화의 음악을 관심을 갖고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올해가 결성 30주년이면서 작년 말에 새앨범이 나왔기 때문에 진정 우리나라의 구르는 돌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음악
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훵/쏠'이었다. 아저씨 보컬인 이철호씨의 창법 역시 때로는 마치 제임스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흑인의 그것이었고 드럼이나 베이스의 그루브 역시 바로 그것이었다. 근데 내가 관심을 갖고 본 건 이 밴드
의 음악이 아니라 바로 아줌마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아.. 뭐랄까. 바로 이것이 진정한 '흥'이라 할 수 있는.. 그런 느낌.
외국에서 '그루브'라 하는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난 '흥'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극히도 댄서블하고 훵한 이들의 음악
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신나게 양옆으로 히쭉히쭉 몸을
흔드는 이들은 바로 '뽀글머리 대한민국 아줌마들'이었다.
난 이런 관객들의 모습이야말로 진짜 그 뮤지션의 공연에 대한 바람직한 관람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년 쯤엔가
오프라 윈프리쇼를 보는데 라이오넬 리치가 새 앨범을 발표하고 게스트로 나왔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신곡을
부르기 위해 전주가 나오자마자 관객들은 일제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라이오넬 리치
와 함께 손뼉을 치며 가볍게 몸을 흔드는 거였다. 난 이걸 보면서 참 씁쓸했는데 우리나라 관객들은 어떤가? 쉬운 예로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기타 유사 프로그램들을 보면..? 점잖게 앉아서 공연을 보다가 조금 신나면 잠시 "우오워~" 함성
한번 질러주고 또 신나면 잠시 박수 몇번 맞춰주고.. 하는 식이 다 아닌가? 그러다가 뮤지션이 (관객들의 양해를 구하고)
미안한 표정과 함께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면 그제서야 '아이고 허리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허.. 참..
난 세대가 바뀌면 젊은 세대들은 문화 수준도 향상된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활기차고 쾌활하면서 enjoy하는 관람 문화
를 보여줄줄 알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건 뭐 기성세대들의 공연 태도나 뮤지션에 대한 호응도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것
같다. 글쎄 뭐 이것도 mp3와 관련이 있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 근데 내가 보기엔 열심히 '판'과 '테이프'를 사던
기성세대들보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확실히 요즘 세대들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공연장에서도 옛날처럼
신명나게 논다는 느낌보다는 살짝 개인주의에, 살짝 냉소주의에 젖어 썰렁한 호응도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이런 모습은
지방팬들보다 수도권에 가까워지면서 더 심화된다는 얘길 들었다. 아니, 음악이 신나서 음악이 좋아서 좀 일어나서
흔들고 박수치면 누가 잡아먹냐? 또 더 웃긴 건 요새 콘서트에 가면 관객들은 박수를 안친다는 거다. 절반은 야광봉을 잡고
흔들고 절반은 곡이 끝나면 가볍게 (예의상?) 환호만 짧게 질러준다. 하도 이러니까 작년말에 싸이의 올나잇스탠드에서
싸이가 관객들에게 '소리지르지 말고 박수만 쳐보세요'라고 했지.. 이런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난.
암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잠시 동안 그 아무도 안보는 i-net 구닥다리 콘서트에 출연한 사랑과 평화 형님들의 공연을
보면서 일제히 손을 흔들며 신나게 춤을 추고 놀아재끼시는 아줌마들의 모습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 공연을 보고
있는 50-60대 아줌마들은 뭐가 쏠이고 뭐가 훵이고 뭐가 흑인음악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며 알지도 못한다.
그저 '음악이 신나니까'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춤추는 거다. 어떤 아줌마는 아예 구석에 가서 관광버스춤을 훵키 리듬에
맞춰 제대로 흔드신다. 음악이 너무 흥이 나고 신나니까 집에서 바깥양반과 집안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거다.
이런 아줌마들의 모습에서 나를 포함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떤게 진짜 공연장에서 해야할 모습인지 좀 진지하게 배워야
이런 아줌마들의 모습에서 나를 포함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떤게 진짜 공연장에서 해야할 모습인지 좀 진지하게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P.S. 사랑과 평화의 8집 앨범이 작년 말에 나왔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 1집부터 사랑과 평화의 주옥같은 앨범들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마치 산울림처럼 전부 CD로 복각해서 재발매하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게 안된단다.
불가능하단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컬 이철호씨의 얘기를 보면 1집부터 7집까지 음반사가 전부 달라서 자신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이런 음반 유통.. 우리나라 진짜 문제 아닌가?
2008/03/06 (목)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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