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notes

나이가 들어가는 거겠지...

tunikut 2008. 12. 26. 11:16

 

엄마 따라 동네 여탕에 가면 항상 오른쪽 천장 아래 환기구가 있었고 왠지 모르지만 그 안은 어두컴컴한 가운데, 널다란 공동 욕조에서

쉴 새 없이 바가지로 물을 퍼담아 몸에 끼얹었다. 목욕을 다하고 목욕탕 현관을 열고 나오면 어쩨나 상쾌했던지..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을에 샤워를 하고 바깥에 나오면 바로 그 느낌을 느껴볼 수 있다는 거다. 겨울은 안되고 가을이어야만 된다. 그 상쾌한 바람이

눈썹과 이마와 양 겨드랑이와 가슴을 스치면 왠지 모르는 쓸쓸함도 맘에 든다.

 

크리스마스에 파란 장화를 신고 아빠 손 잡고 사박사박 퇴계로 보도블럭을 걷다가, 대한 극장에서 그렘린 보고 옆에 있는 제과점에서

단팥죽 호호 불어 먹고 다시 집으로 택시 타고 들어오던 그 날이 생각난다.

 

5살 때 서대문 미동국민학교 건너편에 딕시랜드 윗층에 있었던 공간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아마도 여름 수련회였던 걸로 기억이 난다.

난생 처음 청개구리란 걸 잡아 길가에 뒹굴던 솔 담배곽 안에 넣고 개울 다리를 건너는데 내 옆에 있던 당시 우리반에서 제일 예쁘던

여자애가 그 청개구리 나 줄 수 없냐고 그랬는데 내가 싫다고 했다. 잠시 후에 개울가 바위 사이에서 내 청개구리보다 딱 2배 큰 두꺼비

를 봤는데 그 크기에 기죽어서 잡지 못하고 그냥 내 청개구리도 놓아줬다.

 

옛날에는 크리스마스 설이 오면 가장 신나는 게 엄마 아빠 따라 백화점 가는 거였다. 이미 며칠 전부터 누나들이랑 사전 방문을 통해 맘에

드는 물품을 찍어놓는다. 지금 삼성플라자인 남대문 옆에 동방프라자가 새로 생긴 후로 난 돈은 없지만 틈만 나면 거기 들어가서 장난감

가게 앞에서 구경을 했다. 얼마나 많이 들락날락 했던지 동방프라자 내부 지리를 어린 나이에 다 파악해서 아직도 생생하다. 멀티 비젼이

하나 있었고 그 왼쪽으로 쭉 직진하면 장난감 가게다. 한 크리스마스 날, 전투기 프라모델 하고 심형래 코믹 캐롤 테잎을 사서 집에 왔던

생각이 난다. 집에 와서 크리스마스 트리도 장식했다. 그 떄 심형래 코믹 캐롤이 요새 쟁반노래방에서 종종 나오며 그 때 생각이 많이 난다.

 
나이가 들어가는 거겠지? 언제부턴가 연말, 연시, 크리스마스가 돼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아니 감흥은 커녕 마음 속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런 사실이 참 슬프다.

 

2005/01/01 (토)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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