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tunikut's prejudice

곤충스님윤키 [관광수월래] (2000, Cavare)

tunikut 2020. 6. 16. 10:15

 

이 포스팅을 어디다가 할까 고민을 정말(은 아니고 약간) 많이 했는데 원래는 이걸 정말이지 간만에 유투브에 올릴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오늘 늦잠 자서 (휴가중임) 녹화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렇다고 자다 일어난 얼굴로 머리 떡져서 녹화를 하는것은 범죄 행위이므로 블로그에 올리기로 결심했으며, 사실 잘한 결정인 게 세상 말도 안되는 이 앨범을 적절하게 묘사하기에는 완전 정색하고 노말한 유투브 캐릭터보다는 제한을 덜받는 듯한 이 블로그 캐릭으로 써나가는 게 낫지 싶기 때문이다. 근데 거기서 내 고민이 끝난게 아니고 이걸 tunikut's prejudice에 올릴지 k.b.m. collection에 올릴지 (잠시) 고민을 했었는데 후자의 마지막 포스팅 (싸이였지 아마?)을 올린지 오백억만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그 테마로 컬렉션을 않하기 때문에 tunikut's prejudice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근데 왜 갑자기 이 앨범을 포스팅하기로 했다면 여러번 말했듯이 discogs 앱에서 컬렉션 리스트를 놓고 폰을 흔들어서 랜덤으로 골라졌기 때문이다.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난 이 앱이 골라준 앨범을 들어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괜찮다. 

 

내가 윤키(혹은 Yoonkee, 혹은 김윤기, 혹은 Yoonkee Kim)를 알게 된지 역시 오백억만년 약간 안된 정확히는 사백오십칠억만년 전의 일인데 당시에 내 취미가 뭐였냐면 좆나게 인터넷을 디깅하면서 (당시엔 주로 야후 코리아,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등) 좀 언더그라운드 한국힙합 (특히 랩퍼보단 디제이나 프로듀서) 아티스트들의 동향을 살피거나 신보 소식을 염탐하는 일이었는데 특히나 무슨 그 아티스트가 무슨 소량으로 뭐 데모씨디나 테잎을 발매했다는 소식을 보면 완전 사족을 못쓰고 식음을 전폐하고 그걸 구하려고 무슨 말도 안되는 정모 음감회 뭐 그런데 가서 구입하기도 하고 (아 또 그때 생각하니 눈물이..) 암튼 그랬다. 그렇게 해서 내 레이더망에 올라온 아티스트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분으로 당시 무슨 홈페이지였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디제이 윤기" 뭐 그런 이름으로 당시엔 제법 깔끔하고 어찌보면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것 같은 귀여운 마스크에 전형적인 힙스터스런 힙합디제이의 모습이었는데 (그렇다고 현재의 외모를 평가절하함은 절대 아님. 예전에 이 블로그에 실제 윤키님이 출몰하신 기왕력이 있으므로 말조심해야 함. 윤키님 사랑해요!) 보면 무슨 디제이 배틀 공연장 같은데서 지인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고 한군데 "데뷔 앨범 강간수월래 발매 예정" 뭐 이런 문구를 본것 같아서 내 당시의 앞서 말했던 취미상 발정난 물개처럼 꿩꿩거리며 이 앨범을 기다렸고 그렇게 이 앨범이 수정된 제목으로 발매되자마자 냉큼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이 분은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이시고 여러장의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은 분량 상 생략하겠다. 

 

쩝 글쎄다.. 이 분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까. 이분은 내 기준으로 내가 아는 범위 내에 있는 한국의 뮤지션들 중 가장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하며 다재다능하고 크리에이티브하다고나 할까? 적어도 나한테는 "the most interesting Korean musician"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현재도 아는 분들 사이에선 많이 알려져있지만 내 판단으로는 조금 더 전세계적으로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표현 진부하지만 내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의 Madlib'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싶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 클리셰 많이 쓰네 튜니컷군) 턴테이블을 포함한 여러 악기들을 다룰줄 알고 장르의 구애없는 희한한 음악을, 특히 샘플을 이용한 온갖 해괴하고 기이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매들립이 레코드판 튀는 소리를 샘플로 비트를 만든다면 이분은 똥쌀때 뿌직하는 소리를 샘플로 떠서 그 "직" 부분을 스네어로 비트를 찍을 수도 있지싶다. 이분의 앨범을 듣다보면 별 말같지도 않은 (좋은 뜻임) 샘플들이 들리는데 예를 들면 시비붙어 싸우는 소리, 옆집 아줌마가 애 혼내는 소리 등등 말이다. 실로 김콤비 (그립다..)와 더불어 한국힙합의 (물론 그의 음악을 장르로 규정하는 건 무의미하지만) 실험성으로는 양대산맥이라 할만하고 그런점에서 나랑 코드가 딱 맞는다. 

 

1. 회전 시작

2. 계절별 눈 화장법

3. 느린 서울

4. 우주태권도 사범의 갑작스런 습격

5. 산책1 - 우유를 곁들인 초코칩 쿠키

6. 페달로보트를 작동시키는 일

7. 바다거북을 한국식으로 포위하기

8. 립튼사의 복숭아맛 아이스티

9. 쿠바태생의 공장근로자

10. 내부순환도로의 순환 않함

11. 무릅음악

12. 툭툭털어냄

13. 교회주변풍경

14. 책받침싸움

15. 액체식풀의 대안으로서의 딱풀

16. 산책2 - 즐기세요

17. 산책3 - 자스민차를 곁들인 던킨도넛

18. 아기미호흡

19. 달러환율의 아름다움

20. 롯데월드를 방문할 적절한 시기

21. 회전 끝

 

원래는 트랙 리스트 안적는데 혹시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해 저 잼있음을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 지금이야 뭐 저런 병맛 (좋은 뜻임) 같은 구절들이 많지만 2000년 당시에 저런 곡제목들은 정말이지 신선했고 특히 7, 10, 15, 20 같은 제목은 지금봐도 참 괴랄하다. 앨범 속지도 보면 "쓰여진 것들" 목록에 각종 악기/장비들과 함께 좌뇌, 약간의 우뇌, 매미, 생수통 등이 등장한다. 씨디 자켓도 디지팩을 쫙 펴면 기묘한 느낌의 무슨 아프리카 초원같은데 얼룩말, 물소들이 있는 그림이 나온다. 진짜 쿨하고 좋다. 

 

음악 자체는 기본적으로 당시 아주 신선했던 장르인 내가 지금까지도 열심히 빨아재끼는 인스트루멘탈 힙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참고로 20년이 지난 윤키님의 지금 음악은 더더욱 실험적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그의 밴드캠프를 첵킷하시길) 한 반 정도는 진짜 괴랄하고 전위적이라면 나머지 반 정도는 꽤 각잡힌 깔쌈한 브레잌과 인스트루멘탈 힙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먼저 병맛쪽으로 가보면 염불 소리를 샘플로 곡을 진행하는 5나 17부터 시작해서 판소리가 등장하는 7은 그나마 얌전하다고 보고, 제목부터 끝내주는 10같은 경우는 애들 동요의 한 부분을 루프로 돌려놓고 엄마가 애 부르는 목소리를 반복시키지 않나, 앨범 내 최고로 아방스러운 12에서는 진짜 기분 좆같게 만드는 (좋은 뜻임) 말도 안되는 이상한 루프에 "야 좆같어!"를 반복시키고 이어서 뉴스 앵커가 "놀랄만큼 침착합니다"를 반복하는 구조라니.. 거참.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끝곡 21은 온갖 드라마 영화 뉴스 샘플들을 따와서 "돈많이 잘먹고 잘살라고 하세요" "결혼은 해도좋고 안해도 좋" "피곤해서 쉬어야겠어 힘들어" 막 그러다가 뜬금없이 퍼블릭 에너미 척디 목소리가 나오질 않나 하아..  거참 이 사랑스러움을 어떡해 정말.. 이게 왜 멋지냐면 우리가 매들립 음악 들을 때 각종 영화 시트콤 토크쇼 뉴스 등등을 샘플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 뉴스 대화를 샘플로 했던 아티스트가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한 아티스트인지 짐작이 간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다른 한편으로 이런 부분 때문에 6, 8, 9, 19 처럼 정말 베이스 그루브감 넘치는 힙합 브레잌들도 간과해선 안될것 같다는 거다. 이런 잘 다듬어진 비트들 역시 2000년 당시 lootpack과 quasimoto로 활동하던 매들립 초창기 비트들을 연상시킨다. 

 

벌써 20년 전 앨범이지만 여전히 신선하고 재미지다. 한국 살땐 오히려 미국 아티스트들 찾아들으려고 난리였는데 미국에 오니 다시금 한국 아티스트들을 찾나보다. 이분 요즘 음악들도 좀 꾸준히 팔로우해야겠다. 윤키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