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notes

에미넴의 추억, 그리고 [MMLP2]의 후일담

tunikut 2013. 11. 17. 22:54



일단 내가 쓴 MMLP2의 오피셜 힙합엘이 리뷰는 (http://hiphople.com/review/1490748) 여기에 있고, censored version이 아닌, 디렉터스 컷은 여기 (http://blog.daum.net/tunikut/1235)에 있다. 이 포스팅은 리뷰가 아니고, 그야말로 '후일담' 혹은 '못다한 이야기' 쯤 되겠다. 


내가 대학 3학년 (그러니까 본과1학년) 때 에미넴이 등장했다. 내가 23살 때.. 한창 술먹고 힙합 틀어놓고 춤출 때. 그가 나왔다. 처음에 나한테 에미넴은 어떤 느낌이었냐면.. 딱 정확하게 '듣보잡 랩퍼'였다. '야! (이) 내가 에미넴의 앨범을 한번 사볼까?'라고 친구에게 농담까지 할 정도로, 그의 존재는 나에게는 완전히 rule out이었다. 왜냐하면 (지금도 뭐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나에게 있어 당시에 '진짜' 힙합은 Wu-Tang, Gang Starr, ATCQ, The Roots, Common, De La Soul, The Pharcyde, Pete Rock & C.L. Smooth, DJ Krush, DJ Shadow 였는데 왠 듣보잡 백인 랩퍼 새끼가 존나 뽕끼같은 댄서블한 비트 들고나와서 코맹맹이로 지롤지롤거리는 랩을 듣고 저거 뭐냐? 그랬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케이블 티비에서 하루종일 틀어주던 "Guilty Conscience" 뮤직비디오를 본 느낌이다. 나는 힙합을 그때만해도 존나 진지부심을 가진 상태여서 당연히 그 무렵 미국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정확히는 Bay Area와 Rawkus) 힙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당시 국내에서 씨디를 구할 수 없어 CDNOW (지금의 아마존)에서 아빠한테 카드좀 빌려달라고 해서 주문을 하곤 했는데 그렇게 산 씨디가 The Anonymous의 [Green And Gold] EP (이들은 그룹 이름처럼 아직까지도 무명이다.)하고 [Soundbombing 2]였다. 전자는 서부, 후자는 잘 아시다시피 동부의 언더그라운드 앨범들이다. 근데, 놀란 것이 이 두 앨범 모두에 에미넴이 참여하고 있다는 거다. 오.. 에미넴이 원래 언더그라운드 랩퍼였구나.. 그런 느낌에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그렇게 [SSLP] era가 끝나고 [MMLP]가 발매됐다. 청출어람이청어람이라고 그때 락만 듣던 친구를 내가 힙합에 물을 들여놨었는데, 이젠 나보다 힙합 씨디 사는 속도가 5배는 빨라지고 (반대로 난 다시 락씨디를 샀던..) 막 그런 놈이 있었는데 역시나 [MMLP]가 발매되자마자 나보다 그 친구가 먼저 "야, 에미넴 신곡 들어봤냐? 죽여!" 이랬다. 근데 사실은 그 전날 밤 라디오에서 최근 팝송 뭐 이런 거 소개하는데 성우진씨였나? 어떤 분이 에미넴 신곡이라고 "The Real Slim Shady"를 틀었었다. 근데 난 어 비트가 빠르네.... 이러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암튼, 그 친구 얘길 듣고 같이 그 노래를 들으면서 친구가 넘 좋다고 막 바운스를 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바운스를 따라 하다가 나까지 그 곡에 중독이 돼버렸고, 결정적으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같이 앉아 몇번이고 돌려보면서 (당시는 PC 통신 자료실에서 다운 받아서 봤다.) 둘이서 계속 키득키득거렸다. 그리고는 에미넴팬이 돼서 "My Name Is"나 "The Real Slim Shady"의 모든 라이브 비디오를 미친 듯이 검색해서 다운받아 수집했다. 그렇게 방방 뛰어주고 celeb들과 보이 그룹들을 까주는 에미넴이 너무 너무 재미있었고 너무 너무 좋았다. 매일 같은 에미넴의 뮤직 비디오와 라이브 영상들을 보며 쾌감을 얻었다. 그리고 후속곡이라고 "Stan"이 나왔는데, 나와 친구는 일단 잔잔해서 패스. 그 다음 후속곡이랍시고 "The Way I Am"이 나왔는데 무슨 엿가락 타듯이 판소리 하냐? 이런 느낌이어서 패스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MTV VMA에서 하얀 티에 노랗게 염색한 엠이 수많은 셰이디 클론들을 데리고 방송국 밖에서 끌고 들어가던 "The Real Slim Shady"라이브를 잊지 못하는데, 거기서도 곧바로 메들리로 "The Way I Am" 부르는 거 보고 채널을 돌리곤 했다. 그리고 [The Eminem Show]가 나왔다. 난 그때 실은 힙합 보다 eBay에서 어떻게 하면 하우스 음반들을 잘 bidding해서 살까에 팔려있었던 터라 그 친구한테 그냥 물었다. 신곡이 "Without Me"인데 좋아! 그러더라. 그래서 들어보고는 "잼있긴 한데.. 쩝. 너무 The Real Slim Shady 같당.." 그러고 다시 이베이에 접속했다. 이윽고 에미넴 후속곡이 나왔댄다. 그래서 친구한테 물었다. 이번엔 뭐야? 그러니까 "야, 야, 이번에도 그런 거야.. The Way I Am 스러운 거... (Cleanin Out My Closet 얘기하는 것임)" 그래서, 나는 '휴.. 이제 에미넴은 그냥 The Way I Am 같은 쪽으로만 가는 구낭.' 그러면서 서서히 관심을 끊어갔다. 그리고 영화 [8마일]이 개봉했다길래 주제곡이 뭔지 살짝 궁금해서 들어봤는데 "뭐야 씨발! 또 The Way I Am 이잖아............. 에미넴 인제 그냥 완전 인간드라마로 가는 구만." 뭐 이런 느낌으로 좌절했다. [Encore]? 노관심. 그리고 베스트 앨범이 나왔는데 미발표 신곡이 또 "When I'm Gone"? 아주 막장이구만. 그랬다. 


나에게 있어 에미넴은 이런 존재다. 내가 한창 청춘이었던 시절. 나에게 장르를 떠나, 그냥 그렇게 미친 듯이 날 즐겁게 해줬던 '아이돌 가수'였다. 


한참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Relapse]가 나왔다.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하이톤의 이상한 억양의 랩과 과도한 컨셉이 좀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Recovery]가 나왔다. 가사 없이 처음에 그냥 돌리면서는 '지랄..' 이랬다. 근데 가사가 좋아서 [Recovery]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 [MMLP2]가 나왔다. 사전 공개곡 "Berzerk"를 들으며 그 하얀 티에 노란 머리, 그리고 전형적인 MMLP 시절의

에미넴의 멜로디훅을 딱 들은 순간... 정확한 표현으로 '뭉클'했다. 아.. 에미넴. 고맙다. 딱 이런 마음이었다. "The Real Slim Shady" 이후 잠시 관심을 끊다시피했던, 혹은 그 이후의.. '내 마음 속의 에미넴 그림'에 대한 뭔가 표현할 수 없었던 '허전함'을 시원하게 보상해주는 곡이었다. 그리고 앨범을 들었다. 물론 이 앨범은 내가 에미넴에게 반했었던 "Any Man" 등의 언더그라운드 시절, [SSLP], 그리고 [MMLP](정확하게는 "The Real Slim Shady")의 사운드를 재현한 건 아니다. 사실 뭐 사운드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것에 더 가깝고, 가사도 뭐 역시 그닥 그 시절의 느낌을 충실히 되살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앨범 전체를 들으며, 그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에미넴이 자신의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들을 꽤 새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걸 느낀 순간! 난 이 앨범의 팬이 됐다. 


사실은 리뷰 원고를 보내기 직전까지만 해도 평점은 별 4개를 주려고 했다. 그거보다 적으면 너무 박한 것 같고, 그것보다 많으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대부분의 해외 매체들의 평점이 4/5에 가까웠고, 내 예상에 리드머는 왠지 박하게 줄 것 같다는 촉이 왔기 때문에, 뭔가 차별성을 두고 싶어 4.5/5를 매겨버렸다. (쉽게 말해 객기 부린 거다.) 리뷰에도 썼듯이 "Evil Twin" 말미의 고전적인 슬림 셰이디 스타일의 플로우가 줬던 그 가슴 벅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 딱 들었을 때 남들은 "Headlights"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는데, 난 솔직히는 "Evil Twin"을 듣고 가슴이 정말 먹먹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가 우리에게 줬던 바로 '그것', 바로 '그 즐거움'을 다시 안겨 준 것에 대해 에미넴에게 정말 정말 고마웠다. 그 후에야 "Headlights"의 가사들을 번역해 내려가다가 진짜로 펑펑 울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거나, 눈물이 글썽인 게 아니다. 그야 말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책상에 업드려 혹시나 밖에서 아내하고 애들 들을까봐 소리 죽여서 꺽꺽거리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니들도 서른 일곱살 돼봐..) 그래서 엘이 측에 원고를 보내기 직전, "Evil Twin"의 먹먹함과 "Headlights"의 대성통곡 유발 때문에 미친 척하고 별 반개를 더 붙여서 보내버렸다. 


이 앨범은 에미넴의 어떤 모습을 좋아했냐,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의 에미넴을 좋아했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묘한 앨범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렇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앨범이 없었다. 물론 매체에서의 평점이야 호의적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들 리스너들 사이에는 정말 냉철하게 갈리는 편이다. 근래 이렇게 극명하게 리스너들 사이에서 마치 대립하듯이 호불호가 갈리는 앨범은 없었지 싶다. 그러나 내 생각에, 내 미천한 생각에, 에미넴의 "Marshall Mathers", "Stan", "The Way I Am", "Lose Yourself"와 영화 [8마일], "Cleanin Out My Closet", "Sing For The Moment", "Mockingbird", "Beautiful" 등을 좋아했던 에미넴의 팬들에게는 이 앨범이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앨범은, "Any Man", "My Name Is", "Role Model", "Just Don't Give A Fuck", "The Real Slim Shady", "I'm Back", "Business", "Just Lose It", "We Made You", "Crack A Bottle", "3 A.M." 등을 좋아하는 에미넴의 팬들에게 바치는 그의 선물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안타깝게도 난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