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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Haneke [Amour] (2012)

tunikut 2013. 1. 2. 13:45

 

(노골적인 스포일러 있어요.)

 

새해 첫날인 어제 1월 1일, 처가에 아이들을 맡겨두고 정말로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 극장을 찾았다. 원래는 가까운 데서

아무 영화나 보려고 했으나 워낙에 볼 영화가 너무 없어서 아내와 의논 끝에 이걸 보기로 했다. typical한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보여주러 간다는 게 좀 걸렸으나 요며칠간 내가 아내에게 잘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용서해주리라. (예전엔 그런 아내와 "인랜드 엠파이어"도 봤는데 뭘.) 소리소문 없이 개봉한 이 영화에 새해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지 씨네큐브에는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 영화의 특징은, (1) 보는 동안 좀 불편하다. 거북하거나 역겹거나 막 싫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야말로

'좀 불편'하다. (2) 엔딩을 맞이하는 순간이 좀 당황스럽다. 황당하거나 어이없거나 이러진 않은데 그야말로 '좀 당황'스럽다.

(3) 기억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뭘 봤지? 이런 느낌이기도 하다가 좀처럼 그 영화가 준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 영화 역시 그랬다.

 

일단 영화가 참 조용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참 조용했다. 그리고 내가 본 하네케 감독의 영화 통틀어 (원래 많이 쓰시는 분

이지만) 거의 '난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롱테이크가 많았다. 음향도 없고 롱테이크가 '난무'했지만 영화는 거의 지루함

이 없었다. 그만큼 굉장히 '심리'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인데 "때론 연주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thelonious monk,

miles davis, john cage의 사상처럼 이 영화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훌륭한 재료

로서 롱테이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홍보 문구나 관람평에 '최고의 감동 어쩌고..' 하는 평이 많은데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절대 '감동을 주는' 영화가

아니다. 하네케 스타일의 러브 스토리? 아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누군가. 관객 불편하게 만들기나 씨니컬하기로는 거의

세계 최고다. 또한 인간 본성의 추악함 등을 자주 다뤘던 그이기에..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지못미 특집'.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의해

초래된 비극에 가깝다고 본다. 만약에 '하네케 스타일의 러브 스토리'로 가려면 끝에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이고 본인 역시

그 옆에서 같이 죽던가.. 뭐 이런 식이면 모르겠지만,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죽이고 떠나버린다. 물론 할머니를 죽인 것에

대한 해석이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해석한 이 영화는 '지못미'. 그러니까 감당할 수 없어 떠나버린 거다.

이걸 '인간 본성의 추악함'으로 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겠고,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병에

걸린 안느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결정을 내린 조르쥬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같은 안타까움이랄까..

 

나 역시 영화를 보는 중간에 한없이 먹먹함을 많이 느꼈고 눈시울도 종종 붉혔는데 그 이유는 노년기에 병이 찾아와 진단을

받고 집에 와서 병수발 하는 그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나도 디테일하고 때로는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됐다는 거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만일 나와 내 아내가 늙어서, 아내에게 병이 찾아와 누워 지내야 한다면 어떡하지? 내 마음

이 어떨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생각. 근데 이 영화는 내가 가졌던 그 생각을 잔인하리만치, 마치 내가 걱정하던

상황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는 것 같이, 내 가슴을 후벼 파듯이 계속 진행을 했고, 난 그 점이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에게는 만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