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notes

강박 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

tunikut 2009. 6. 23. 10:52

 

 

나는 매우 지독하리만치 강박적이다. 강박 '장애'라는 진단이 붙으려면 이로 인해 심각한 사회적 malfunctioning이 동반돼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trait'이라는 말이 있는데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저런 '성향'을 의미한다면 나에게

존재하는 건 분명 trait은 아니다. 그보다는 좀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정 사회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내 머리 속

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곯아터질대로 곯아터진 상태, 개인적으로나 심적으로는 무척이나 괴롭다.

 

보통 내가 '강박적'이라는 말을 하면 다들 날보고 그럼 완고하고 깨끗하고 완벽주의자적인 게 있느냐고 물어본다. "근데 널 봐서는 그다지

깔끔떨지도 않고 완고하지도 않고 완벽주의적이지 않은데?" 그렇게 얘기 한다. 근데 이건 분명히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대다수가

생각하는 '강박적'이라는 말 속엔 '완고하고 완벽주의적이며 결벽증적인 성향'이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근데 이건

'강박 장애'와 '강박형 인격 장애'를 혼동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강박형 인격 장애'는 완벽한 misnomer다. 보통 우리가 '완고하고 고집

세고 완벽주의적이며 결벽증적'이라고 하는 경우는 '강박형 인격 장애'에 해당한다. 흔히 예로 들어지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

나오는 잭 니콜슨의 캐릭터가 대표적인 '강박형 인격 장애'에 해당한다. 그럼 '강박 장애'는 뭘까?

 

'강박 장애'는 그런 게 아니다. 강박 장애라는 말이 붙으려면 반드시 '강박적 사고'와 이를 보상하기 위한 '강박적 행동'이 필수적으로 나타

나야 한다는 거다.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어떤 불편하고 괴로운 생각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하고 의식적으로 이를 취소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이상 행동을 하는 게 바로 '강박 장애'이며 내 머리 속에 나타나는 정신 병리가 바로 이거다. 다시 말해 '강박형 인격 장애'

에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말이 misnomer라는 건데 우리들 대부분은 '강박적이다'라고 하면

'강박형 인격 장애'의 증상들을 떠올린다.

 

내 경우가 어떤지 말해 볼까? 어린 시절부터 나타났다. 어떤 특정한 싯츄에이션이 주어진다. 그럼 그 싯츄에이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가 머리 속에 떠나지를 않는다. 근데 그냥 단순히 그 생각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 최악의 결과를 '바라는' 생각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다. 이게 더 괴로운 이유는 그 싯츄에이션의 대상 인물이 부모나 형제, 가족, 아내, 자식들 등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너무

explicit해질까봐 구체적인 예를 들진 않겠다. 암튼 굉장히 악마적이고, 굉장히 부도덕하고, 굉장히 불경스러운 생각들이 내 의지와는 무관

하게 아무런 경고도 없이 나타난다. 그럼 난 그 생각들에 흠칫 놀라 '내 의지에 의해' 나를 꾸짓는 행동을 한다. 내 뺨을 쎄게 휘갈기거나,

내 머리를 벽에 박는다거나, 살을 꼬집는다거나, 손을 계속 씻는다거나,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이게 '강박 장애'에서 흔히

언급되는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강박 장애 환자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심리적 방어 기제는 감정의 고립(isolation of affect),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그리고 취소

(undoing)이다. 감정의 고립은 어떤 상황에서 극도로 발생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무뚝뚝하게 표현하는

걸 말하고, 반동형성은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 그리고 취소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보상

하는 걸 말한다. 나는 흔히 환자를 대할 때나 대화를 하다가도 심하게 감정의 틀이 흔들리면 의도적으로 굉장히 무뚝뚝하게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할 때 내 머리속은 찡한 느낌이 들면서 실신이라도 할 것 처럼 어지럽다. (감정의 고립) 또한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감정

을 무의식적으로 숨기기 위해) 그 사람에게 일부러 화를 내고 때로는 공격하기까지 한다. (반동형성), 그리고 마지막은 위에서 얘기한 것

처럼 부도덕한 생각이 들어서 그걸 제거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취소)

 

그나마 병식이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지만 ego-dystonic한 상태임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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