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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ight Years of Korean Hip Hop

tunikut 2008. 12. 26. 11:51

 

 

97년도에 김진표의 [열외]가 처음 나왔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인기있었던 음악이 뭐냐면 델리스파이스 그런 거였다. 주로 모던락/인디씬의 음악을 듣던 사람들 사이에서 김진표의 열외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더랬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이텔에는 검은소리라는 동호회가 있었는데 그 때만해도 누가 총을 쐈네 안쐈네 투팍 짱 이런 분위기가 주였고 일부 생각있고 진지한 동호회인들 사이에서 옴니버스를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게 [검은소리, 첫번째 소리]다. 아마도 당시 회원들로부터 일일히 신청을 받아서 신청자들에게만 소량으로 배포됐었다. 신촌의 푸른굴 양식장에서 스미스, 델리스파이스, 모리씨 이런 거 주로 듣다가 김진표의 열외도 같이 들으면서 이어서 나온 게 갱톨릭의 [A.R.I.C.]였고 역시 힙합맨들보다 모던락맨들 사이에서 먼저 감지되어 입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피씨 통신 동호회 게시판에 '국내 최초 갱스터 힙합'이라는 등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갱톨릭의 <변기속 세상>은 상당히 노골적이며 충격적인 가사, 사회 비판 메세지로 회자됐다. 그게 불과 8년전의 일이다. 김진표의 열외와 마찬가지로 갱톨릭도 먼저 모던락맨들에게 감지됐기 때문에 당시 독립적인 힙합 공연 무대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갱톨릭은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공연'을 스위트피, 델리스파이스, 데이트리퍼 등과 함께 했다. 당시 우리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우리나라에도 힙합이라는 음악이 태동하는 구나' 이랬다.

 

당시 검은 소리는 어땠을까..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블렉스 채팅방에서 지금은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아는 아티스트인 그 분은 욕설이 뒤섞인 채팅 도배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고 그걸 중재하고 말리던 분이 바로 당시 시삽이셨던 지금의 엠씨 메타님이셨다. 결국 검은 소리 운영진측과 그 문제를 일으키던 회원 - 나도 채팅방에서 무지하게 당했다 - 간에 사이가 벌어지게 되어 그 문제 회원은 자신과 친한 일부 몇몇을 데리고 검은 소리를 탈퇴, Back's Row라는 소모임을 만들었고 그게 발전하고 발전하여 지금의 그 유명한 어떤 크루가 됐다. - 근데 그 크루도 이제 거의 죽은 듯 하다. 암튼 당시 검은 소리에선 어떤 음악적인 활동보다는 사건 사고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모던락맨들의 안식처였던 푸른굴 양식장이 문을 닫고 클럽 MP로 바뀌면서 대 변화가 일어났다. 모던락맨들의 지지를 받던 갱톨릭과 힙합맨들의 모임터 검은 소리라는 대한민국 언더 힙합 양대 시조가 클럽 MP에서 조우했으며 본격적인 언더그라운드 힙합 공연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클럽 MP의 공이 무지하게 컸던 게 사실이다.

 

이 공연이 열리면서 가리온, Da Crew, Dope Boyz, PDPB, CB Mass (당시는 멤버가 달랐음), 엠씨 워렌 (지금의 주석) 등의 팀들이 MP라는 공간에서 갱톨릭과 함께 무대를 만들었고 이게 바로 K-HipHop의 본격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들이 K-HipHop 1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이제 곳곳에서 대한민국 힙합을 한다는 무리들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대개는 PC 통신 동호회나 소모임이 그 가장 큰 축이 되었는데 유니텔의 워드업, 천리안의 플로우 (맞나), 에듀넷의 힙합정신 등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우누리의 SnP였다. Shy-D AKA Defconn, Verbal Jint, 4WD (원래 그는 싱어였다), 절정신운한아, P-Type, B-Soap, Tafka Buddah, Westylez, 휘성 등등 너무나도 유명한 여러 걸출한 아티스트들이 배출됐으며 내가 보장하건데 당시 인디 힙합씬에서 가장 왕성한 음반 활동과 창작물들을 보여줬다. 이 때 나온 음반들이 바로 한아 데모 앨범, 포워드 노자, 버벌진트 섹스 드라이브, 트라직 템플, 크릭, 트리쉬 팍 싱글 등등 지금의 레어 아이템들이다. 이들이야말로 K-HipHop의 질을 한층 높이는 K-HipHop 2세대가 아닐까...

 

SnP 아티스트들이 한창 창작 활동을 할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조피디다. 그는 데뷔 앨범에서 국내 최초로 공식적인 메이져 앨범에서 욕이 실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그의 데뷔 앨범으로 인해 국내 음반계 사상 최초로 연소자 청취 불가 딱지를 걸고 사전 심의 없이 음반이 발매되는 대혁명이 일어났다.

 

이후로 millim.com에서 주로 mp3 창작 활동을 하던 MC 한새, 1SaGain, 라임 살인마, 서드 라이머, 힙합 마인드 등의 - 솔직히 개인적인 생각에 구린 음악들을 들려주던 - 집단들이 있었고 K-Coast Story라는 이름으로 전국 대학가 중심으로 인디 힙합씬의 아티스트들의 연합이라는 어떤 개념이 생겼으며 청주에서 사거제곱사가 데모 앨범을 내면서 지금의 45RPM이 되고.. 대구에서도 힙합 선수들이 모여 컴필 앨범을 내고.. 부산에서는 DMS가 나타나고.. 암튼 지역의 구분이 없이 전국적으로 힙합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랩퍼홀릭은 로우독 레코드라는 국내 첫 힙합 레이블을 설립하기도 했다. 암튼 다소 정신없이 중구난방격으로 우후죽순처럼 힙합 아티스트들이 쏟아졌다.

 

그러다가 이제 본토처럼 레이블을 중심으로 정규적으로 음반 활동을 하며 힙합 아티스트들이 뭉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힙합씬이 생겼다. 예전에는 마치 하나의 기획사같았던 YG 엔터테인먼트도 이제는 마치 힙합 레이블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현재의 레이블 중심의 씬이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MP, 가라사대, 신의 의지, 소울 컴퍼니, 한량사 등등..

 
그 이후의 이야기는 현재의 힙합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는 바이며 오히려 나보다도 잘 알 것이다.

 

 

암튼 간에... 아주 바람직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2005/07/08 (금)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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