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ikut's Cultural Paradise

house music

The History of House Music (1)

tunikut 2008. 12. 24. 14:27

“Not everyone understands House music; it’s a spiritual thing; a body thing; a soul thing.” 

 -  Eddie Amador

 

Proto-history: from disco to house: late 1960s to early 1980s

 

 

하우스, 테크노, 일렉트로, 그리고 힙합 뮤지션들은 그 존재에 대해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선구자들에게 어느 정도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버튼이나 키 하나만으로 그 신기한 사운드의 마법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이들이 하우스 음악을 Donna Summer의 “I Feel Love”로부터 시작됐다고 믿고 있지만 하우스 음악 이전에도 완전한

형태의 전자 음악들은 물론 존재했다. 테크노 음악을 사랑하는 세대들은 초창기 미국의 공상 과학 영화들과 BBC 방송국의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인 Doctor Who의 사운드트랙에 열광했다. 그들은 소위 Krautrock으로 불리던 초기 전자 음악씬(Tangerine

Dream과 Klaus Schulze), Pink Floyd, Soft Machine, Amon Duul, Crazy World of Arthur Brown과 같은 1960년대 후반의

싸이키델릭 음악과 그 영향을 받은 1970년대 space rock 세대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 음악을 속임수같고 애들 장난

같다고 배척하였으며 마치 독일의 kosmische muzik 씬과 비슷한 행로를 걸었다. Space rock은 록의 기본 요소에 공간적이고

부유하는 듯한 백그라운드, 힌두의 주문을 외우는 듯한 루프, 전자적 시퀀싱, 그리고 미래적 효과 등을 덧입힌 형태다. 이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아티스트들로는 Gong과 Hawkwind가 있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발전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이용한 디스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고 처음엔 주로 게이와 흑인 청중들의

호응을 받았지만 1977년 영화 Saturday Night Fever 이후 미국 전역에 메인스트림 컬쳐로 떠오르게 되었고 각지에 여러 디스코

클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78년 1월 뉴욕에서는 DJ Larry Levan (1954-1992)을 앞세워 클럽 “Paradise Garage”가 오픈

하였다. 또 다른 뉴욕의 디스코 클럽인 Studio 54 역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이 클럽들에서는 Diana Ross, Chic, Gloria Gaynor,

Kool & The Gang, Donna Summer, 그리고 Larry Levan의 히트 싱글인 “I Got My Mind Made Up” 등이 플레이되었다. 하지만

이런 디스코 붐은 수명이 짧았다. 1979년 시카고 라디오 DJ인 Steve Dahl의 “Disco Demolition Night”라는 곡이 발표되며 이

미국 중부 지역으로부터 디스코에 대한 반발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디스코는 시카고 Illinois의 Warehouse와 같은 작은 클럽

으로 규모가 줄게 되었다.

 

1977년에 오픈하여 시카고의 제퍼슨가에 위치한 Warehouse는 하우스 음악의 발전에 가장 핵심적인 장소였다. 메인 DJ는

Frankie Knuckles였다. 이 클럽에서는 여전히 올드 디스코 음악이 주로 울려퍼졌지만 몇몇 곡들에서는 이러한 올드 튠들에

약간의 deck work를 통해 다시 생명력을 불러 일으키는 DJ들의 역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믹싱이라는 새로운 기술은

또한 WBMX 라디오 방송의 Hot Mix 5에게도 이용되었다. 여기서 사용되던 주된 레코드들은 모두 시카고의 한 수입 레코드

스토어에서 팔았는데 그것들을 묶어서 ‘Warehouse에서 플레이되는 음악’이라 하여 앞의 Ware를 떼어내고 “house”라는

이름을 붙여 분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믹싱 기술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단독적으로 쓸 수 있는 드럼 머신이 나오기

전까지 플레이되는 주된 음악은 역시 디스코였다. 그러나 새로운 믹서와 드럼 머신이 나오게 되면서 디스코 음악은 소멸의 길을

걸었고 DJ들의 세력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한편 잉글랜드의 셰필드에서는 인더스트리얼 밴드인 Cabaret Voltaire가 1981년 초에 “Automotivation”과 같은 트랙을 통해

그들만의 하우스 사운드를 개척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The Clash의 몇몇 곡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Chicago years: early 1980s – late 1980s (Chicago house)
 

1983년에 시카고에서는 Music Box라는 클럽이 오픈하였다. Robert Williams가 클럽주로 있었으나 가장 파워풀한 사람은 역시

DJ였던 Ron Hardy였다. 이 클럽 사운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곡들의 속도감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 속도

감은 분명히 히로인을 복용한 Hardy 때문이었다. 이 클럽에서는 또한 디스코 뿐만 아니라 보다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틀었는데

Kraftwerk나 Blondie의 음악은 인기가 있는 편이었고 가끔 장난 삼아 punk 음악도 선보였다.

 
최초의 하우스 음악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두 곡이 있는데 모두 1983년 초에 발표되었다. 시간적 순서로 봤을 때 먼저 나온 것은 Jamie Principle and Frankie Knuckles의 “Your Love”로 클럽에서 대박 히트를 쳤지만 tape 형태로밖에 발매가 안됐다. 또 다른 하나의 곡은 Jesse Saunders의 “On And on”으로 1985년에 vinyl로 재발매됐다. 그 이후에 Chip E의 “Jack Trax”가 발표됐는데 복합적인 리듬, 심플한 베이스라인, 샘플링 기술의 사용, 미니멀한 보컬리스트의 기용 등 하우스라는 장르를 정의한다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보여줬다.

 

1985년까지 하우스 음악은 시카고의 클럽들을 장악하다시피 했는데 그 이유로 102.7 FM 라디오 방송인 WBMX와 그 레지던트

DJ 팀이었던 Hot Mix 5의 역할도 컸었다. 또한 보다 새롭고 값싸고 보다 정밀한 시퀀서와 드럼 머신들(Roland TR-909, TR-808,

TR-707, 그리고 라틴 퍼커션 머신인 TR-727 등), 베이스 모듈(1985년 후반에 등장한 전설적인 Roland TB-303 등)과 같은 음향

기기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하우스 창조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음악을 보다 폭넓게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아시다시피 acid house

라는 장르는 DJ Pierre, Larry Heard, Marshall Jefferson과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드럼 머신에 대한 피땀 어린 애정과 노력으로

창조된 장르 아닌가. 

 
한편 시카고의 하우스 음악씬에 있어 두 개의 중요한 레코드 레이블이 있었는데 하나는 Rocky Jones가 사장으로 있던 DJ International Records였고 다른 하나는 Larry Sherman이 소유한 Trax Records였다. Trax는 셀프-프레싱을 했었는데 DJ International의 DiscMakers 프레싱 기법에 비해 그 퀄리티가 좀 떨어졌다.

 

 

이 두 레코드 레이블로부터 하나의 era를 형성하는 주옥 같은 싱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DJ International에서 나온 대표적인

것들로는 Steve “Silk” Hurley의 “Music Is The Key”, Chip E의 “Like This”, Fingers Inc.의 “Mystery Of Love” 등이다. 한편

Trax의 대표 싱글로는 1985년에 Farley Jackmaster Funk가 발표한 “Jack The Bass”와 “Funkin With The Drums Again”,

이듬해에 나온 Marshall Jefferson의 그 유명한 하우스 클래식 “Move Your Body (The House Music Anthem)”, 그리고

Adonis의 “No Way Back” 등이다.

 
이것은 마치 양날을 지난 칼과 같았다. 즉 Trax 레코드는 신인 아티스트와 즉각적으로 빨리계약해서 빨리 레코드를 찍어주면서

그 카탈로그가 아주 많은 장점이 있었지만 레코드를 빨리 찍으려고 재활용 바이닐을 이용했기 때문에 사운드 퀄리티가 떨어진다

는 단점이 있었고 또 안좋은 점은 아티스트들의 처음 계약 조건보다 실망스럽게 대접을 했다는 점이다.

 

 

Adonis의 “No Way Back”, Larry Heard (as Fingers Inc.)의 “Can You Feel It”, 그리고 1986년에 최초의, 소위 ‘하우스 찬가’

라고 불리어지는 Marshall Jefferson의 “Move Your Body” 등과 같은 여러 클래식 싱글들을 발매하면서 Trax는 바야흐로

dominant한 하우스 레이블이 되었다. 특히 Marshall Jefferson의 “Move Your Body”는 하우스 음악에 있어 큰 반향을 일으킨

곡인데 이 곡을 통해 하우스라는 장르를 시카고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널리 알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Steve “Silk” Hurley

는 1987년 발표한 “Jack Your Body”를 통해 하우스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곡과 더불어 그의 “Music

Is The Key”나 “Love Can’t Turn Around” 등을 통해 이제 하우스 음악은 그 스피릿츄얼한 고향인 미국으로부터 상업적으로

‘팔리는’ 영국으로 자리옮김을 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는 Tyree Cooper, Mr Lee, Fast Eddie, Kool Rock Steady,

그리고 Ralphi Rosario 등과 같은 인터네셔널 프로듀서들에 의해 acid house와 hip-house 씬도 등장하게 되었다.

 
The Detroit Connection: early 1980s – late 1980s (Detroit techno)

 

 

이와 같은 시기에 디트로이트에서도 하나의 음악 장르가 생기고 있었는데 바로 ‘디트로이트 테크노’라고 알려진 음악이다.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까지 전설적인 디제이인 The Electrifying Mojo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통적인 사운드

를 디트로이트 테크노 사운드로 흡수시키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후 유러피안 전자 음악(Kraftwerk, Art Of Noise), 초창기 비보이

힙합(Man Parrish, Soul Sonic Force), 그리고 이탈로 디스코(Doctor’s Cat, Ris, Klein M.B.O.)와 같은 음악에 주로 영향을

받아 이 디트로이트 테크노 음악이 발생하였고 Juan Atkins, Derrick May, 그리고 Kevin Saunderson이 그 선구자들이다.

시카고 하우스가 붐을 이루던 시절 이와 맞물려서 돌아가던 이 장르의 최초의 싱글들로는 1985년에 발표된 Juan Atkins의 그룹

인 Model 500의 “NO UFOs” (Metroplex Records), Trans X-Ray (Derrick “MAYDAY” May)의 “Let’s Go” (KMS Records),

Inner City (Kevin Saunderson)의 “Groovin’ Without A Doubt” 등이 있다.

 

Juan Atkins가 소유하던 레이블인 Metroplex에서 “NO UFOs” 이후 나온 싱글들로는 1986년에 “FUTURE”, 1988년에 “Sound Of

Stereo / Off To Battle”, 그리고 1989년에 “The Chase” 등이 있다. (확실히 이쪽 음악은 ‘love 어쩌고’ 하는 하우스쪽에 비해

제목들이 다 딱딱하다 – 역자주)

 
한편 KMS에서 이후로 나온 싱글들로는 Blake Baxter의 1986년의 “When We Used To Play / Work Your Body”, 1987년의

“Bounce Your Body To the Box”와 “Force Field”, MAYDAY의 1988년의 “Wiggin’”, “The Sound / How To Play Our Music”,

“The Groove That Won’t Stop”, 그리고 “Grooving Without A Doubt (Remix)” 등이 있다. 1988년에 하우스 음악이 보다 상업화

되면서 Kevin Saunderson과 Paris Gray의 그룹 (Inner City – 역자주)은 1988년의 히트작인 “Big Fun”과 Virgin을 통해 “Good

Life” 등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각각의 EP나 12인치 싱글들은 계속해서 Mike “Hitman” Wilson이나 시카고의 Steve “Silk” Hurley,

디트로이트의 Derrick “Mayday” May나 Juan Atkins에 의해 리믹스가 이루어졌다. 1989년에 KMS에서는 또 하나의 히트 싱글인

“Rock To The Beat”를 발매했는데 이 곡은 시카고 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Derrick “Mayday” May의 스타일은 마치 시카고 출신의 Larry Heard (Mr. Fingers)의 그것과 유사했었는데 이윽고 서서히

차별화되고 유니크해지면서 시카고에서도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당시 1986년부터 1989년 사이에 그의 Transmat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 싱글들로는 “Nude Photo”, “It Is What It Is”와 Rythim Is Rythim의 “Beyond The Dance”, Suburban Knights의

“The Groove”, R-Tyme의 “Illusion” 등이다. 하우스 음악씬에 가장 큰 히트를 일으키며 큰 영향을 준 곡은 Rythim Is Rythim의

“Strings Of Life”였는데 이 곡은 전세계적으로 댄스 뮤직 클럽의 컬트 클래식이 되었다. Derrick May는 또한 Kool Kat과 함께

“Nude Photo 88”, 컬트 클래식인 “Sinister” 등을 발매하기도 했다.

 
비록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테크노” 음악의 일부이고 그 자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선구자들은 분명 하우스 음악의

전세계적인, 특히 영국과 유럽으로의 확산에 있어서 큰 동기를 일으킨 존재들이었다. 

 
2편에 계속…
 
 

* 이 글은 Wikipedia.org에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2006/07/09 (일) 0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