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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 [King's Disease] (2020, Mass Appeal)

tunikut 2020. 10. 11. 14:57

 

 

메트로폴리탄이라는 느낌이 이런 걸까.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기억이란게 그런건지 묘한 공감이 되는 게 있는데 떨스턴 무어형이 락앤롤 컨셔스니스 앨범에 실린 스모크 오브 드림스라는 곡에서도 거의 똑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나스의 열세번째 앨범인 이 킹스 디지즈가 가장 먼저 주는 느낌은 왜 그 전반적으로 풍기는 그 아늑한, 아니 아즈막한, 어릴적 보던 대도시의 내음과 뿌연 안개같은 풍경같은 느낌이다. 뉴욕에 가보면 보이는 그 왜 오래된 녹슨 다리들과 함께 뒷골목의 음식물 쓰레기 냄새 그리고 매연.. 그것들이 어릴적의 아늑한 향수와 어울려서 "연기"와 "유령"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오나 보다. 뉴욕 출신인 나스와 떨스턴 무어형 둘다에게 말이다. Car #85나 27 Summers에서 느껴시는 깊은 향수는 알수없는 품위가 느껴질 정도다.

앨범을 들으면서 "그래도 역시 나스"라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다. 켄드릭을 비롯 가사 잘쓰는 랩퍼들은 너무너무 많지만 나에게 역시 최고의 리리시스트는 나스 이상 가는 랩퍼가 없다. 어떤 뮤지션의 앨범을 기다리면서 '가사가 기다려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무릎을 딱쳤다. 아무리 멈블랩 등등 가사가 주는 영향력이 예전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난 이런 하나의 조류도 좋다고 봄) 그래도 여전히 랩퍼로서 자신의 솔로 앨범의 어떤 컨셉과 방향과 테마를 짜임새 있게 만드는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다소 불안불안한 에미넴의 행보에 비해 (그래도 에미넴은 사랑임),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자신이 걸어온 커리어를 바탕으로 여전히 힘든 현실을 반영하면서 '현시대의 나스'로서 가장 적합한 주제와 컨셉과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솔직히 굉장히 기뻤다. 나스는 앨범의 첫곡부터 자신은 곱게 늙어간다고 한다. 깊게 동의한다.

구성부터 멋지다. 인트로에 '킹스 디지즈'로 화두를 뛰우고 the definition에서 구체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트럼프 시대의 혐오와 분열이 판치는 현 미국의 질병을 논의하더니 마지막에 the cure에서 현재의 young black kids들을 향해 나스다운 조언과 격려를 한다. 앨범의 유일한 뱅어인 spicy를 오히려 쿠키 영상처럼 끝에 넣어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흐트리지 않고 귀엽게 마무리하는 것도 맘에 든다. 10 points에서 르브론 제임스와 마이클 조던을 코러스에 배치해놓고 모두가 "왕"이 되길 격려하는 가사는 정말이지 명불허전이다.

그런 관조적이고 향수적이고 성숙함이 듬뿍 넘치는 이 앨범의 음악 감독을 맡은 힛보이의 역할을 잊어선 안되겠다. 빈티지함과 트렌디함을 모두 갖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만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힛보이는 이 앨범에서도 나스의 가사들에 최적화된 소리들을 들려준다. 완전히 트렌디한 트랩으로 빠진것도 아니고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그저그런 붐뱁도 아닌, 뭐랄까.. 살짝 90년대 느낌을 주는 피아노음을 군데군데 배치해 앨범의 성숙하고 관조적인 느낌을 기가 막히게 잘살렸다고나 할까?  혹자는 the firm의 재결합인 full circle에서 90년대의 조지는 붐뱁을 기대했을지 모르나 오히려 '희대의 재결합'에 대해 거창하게 접근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위에 언급한 90년대 컨템포러리 느낌이 나는 비교적 레이드백한 느낌과 여성에 대해 노래하는 비교적 일상적인 가사가 담백한 느낌을 줘서 개인적으론 그 재결합의 감동이 더 했다. 당장이라도 90년대 뉴욕 시내를 택시를 타고 다니는 느낌을 주는 Car #85를 들어보면 말 다했다.

글쎄다.. 뭐 이 앨범의 희대의 우주 명반이다 뭐 그런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물론 단점을 꼽자면 찾을 수도 있겠지. 그치만 나스라는 랩퍼가 현재의 위치와 상황에서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가사와 음악을 가지고 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오랜 팬으로서 기쁠 뿐이다. 나스 말마따나 '곱게 늙어가는' 앨범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