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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음악은 앞으로 어떻게 갈까?

tunikut 2010. 2. 25. 17:46

 

1.

리드머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가 80년대 말 찌들대로 찌든 헤비메틀씬에서 커트 코베인의 등장이 가져다 준 신선함을

토로하는 댓글을 봤다. 그리고 지금의 힙합씬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난 잘 모르겠지만 이럭저럭 공감은 간다.

원래 힙합 음악이라는 게 굉장히 형식적으로 한계가 많다. 일단 랩을 할 수 있는 기본 브레익비트가 갖추어져야 하고

거기에 랩이라는 보컬 형식이 들어간다는 건데.. 여기서 크게 variation이 생긴다고 얼마나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랬고 힙합만 듣다보면 도저히 '지겨워서' 못참는 지경이 한번은 온다. 그래서 그 친구는 알앤비를

듣고 난 재즈를 듣지만.. 힙합씬에도 커트 코베인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이 간다. 근데 커트 코베인이 처음 나왔

을 때 어땠나? 대부분의 록팬들은 '역함'을 느꼈다. 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머틀리 크루나 쥐앤알을 듣던 내가 어느날

AFKN의 SNL 라이브에 나온 너바나를 보고 심지어 악몽까지 꿀 정도로 역겨웠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어찌됐든 지금의 

힙합씬에 커트 코베인의 등장이 필요하다면 그 '역사적 사명을 띤' 인물은 분명 기존 힙합팬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꿀

만한 '이상하고 안어울리고 역겨운' 걸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향후 수십년간 그 힙합계의 커트 코베인이

가지고 나온 음악이 대세를 장악할 것이다.

 

근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힙합씬의 새로운 물결은 어쩌면 벌써 나온 걸 수도 있다. 보통 제이지의 블루프린트를 기점을 

두고 칸예 웨스트로 대표되는 사운드가 그 이후를 장악했다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힙합은 꽤 남성

적이고 폭력스러우며 비장함까지 있었다고 본다면 칸예 웨스트가 들고 나온 '컬리지적'인 느낌은 분명 새로운 파라다임

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싶다. 이런 '컬리지적'인 느낌의 힙합들은 현재 올뮤직이나 위키페디아같은 인터넷 매체에서 대부분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있다. 얼터너티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록씬에서 얼터너티브가 유행하게 된 게

커트 코베인이 일으킨 그런지 붐이었다고 본다면.. 그리고 이후에 R.E.M.으로 대표되는 '컬리지록'이 주목을 받았다고

본다면, 어쩌면 힙합씬의 커트 코베인은 어쩌면 칸예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면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그런 '컬리지적'인 힙합들은 칸예 이전에도 언더그라운드씬에 많이 있어왔다고.. 

그렇다면 너바나의 등장 이전에도 언더그라운드에 바셀린즈와 픽시스가 있었다고 난 말하겠다.   

 

2.

힙합씬의 흐름을 보면 묘하게도 재즈의 역사와 닮은 점이 참 많다. 1930년대 유행하던 스윙 재즈가 40년대 들어서부터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에 의해 비밥으로 개화하면서 이를 충실하게 이어받은 이스트코스트에서는 하드밥이 유행

했고 반대로 이스트코스트의 어둡고 굵직한 사운드에 반해 웨스트코스트에선 쿨 재즈가 생겼다. 자, 힙합으로 다시

가보면 올드 스쿨 힙합이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ATCQ, De La Soul, D.I.T.C., Pete Rock & C.L. Smooth 등에

의해 뉴스쿨로 개화하면서 이를 충실하게 이어받은 이스트코스트에서는 90년대 '동부힙합'이 유행했고 반대로 이스트

코스트의 어둡고 굵직한 사운드에 반해 웨스트코스트에선 쥐훵크에 기반한 힙합이 생겼다.

 

하드밥과 쿨 재즈로 양분되던 50년대 재즈는 60년대로 들어서면서 프리 재즈라고 하는 실험적인 스타일과 70년대 이르러

퓨젼재즈라고 하는 스타일이 등장하면서 기존 재즈팬들에게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에 퓨젼 재즈는 돈이 되는 장르였고

허비 행콕과 칙 코리아는 전자 사운드를 기반으로 돈을 벌여들었지만, 정작 묵묵히 밥 스타일을 추구하던 레드 갈란드

같은 피아니스트는 고리타분하다는 평을 감수해야 했다. 다시 힙합으로 가서.. 이스트코스트힙합과 서부의 쥐훵크로

양분되던 90년대 힙합은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El-P 등으로 대표되는 실험적인 언더그라운드 스타일과 전자 사운드를

기반으로한 클럽튠의 스타일이 등장하면서 기존 힙합팬들에게 논란을 일으켰다. 지금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

는 돈이 되는 장르이고 Lil Wayne과 Timbaland는 이를 기반으로 돈을 벌여들였지만, 정작 묵묵히 기존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D.I.T.C.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고리타분하다는 평을 감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으로 가보자. 재즈의 역사는 힙합의 그것보다 50년은 더 앞서 있다. 자 그럼 퓨젼 재즈 이후의 재즈씬

을 본다면 앞으로 힙합씬이 어떻게 갈 지를 어느 정도는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이를 어쩌랴. (재즈 전문가가 아닌)

나도 그렇게 느끼지만 정작 재즈 전문가들도 아직까지 퓨젼 이후에 재즈씬을 새롭게 장악하는 스타일은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저 퓨젼과, 아방가르드, 스윙과 전통적인 밥.. 등등이 뒤섞여 이를 우리는 '컨템포러리 재즈'라고

대충 뭉뚱그려 표현한다. 그렇다면 재즈의 역사를 닮아간 힙합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쩌면 재즈의 그것처럼 더 이상

은 '이거다'라고 할 만한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지 못한채 올드스쿨, 뉴스쿨, 아방가르드, 쥐훵크, 90년대 이스트코스트,

클럽튠 등이 범벅된 '컨템포러리 힙합'으로 정체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