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s

寂寞

tunikut 2008. 12. 26. 15:50

                                                                                                                     "Gas" (1940) by Edward Hopper

 

조용한 새벽이다. 자정이 약간 넘은 시각.
 
아내도 안방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고, 아기도 양팔을 벌린채 옆방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1박2일 재방송과 야심만만 예능선수촌을 보면서 실컷 웃다가 티비를 끄고 주방에 간다. 냉장고 문을 열고
삼다수 뚜껑을 열어 한모금 마시고 다시 넣는다. 그리고 컴퓨터방에 들어와 앉는다. 
그 사이 온 이메일은 없다. 블로그에 들어가니 매일 매일 지워도 자꾸만 달리는 악성 스팸 댓글 2개가 또
올라와 있다. 신고하고 지운다. 힙플에 가본다. 로그인을 해봤더니 쪽지가 와있다. 더큐의 뮤직 초판과
큐트레인을 구하고 싶다는 어떤 분의 쪽지다. 리드머에 가본다. 더 루츠의 내한 공연 소식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조용한 방에 잠시 앉아있다. 잠이 안온다. 요즘들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두통의 빈도가
잦아졌다. 이마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드름이 잔뜩 돋아 있다. 심신이 피로하고 지쳤다.
 
책상 위엔 강의록 한 권이 놓여있다. 아까 주요 부분 도표들을 복사하고 난 후에 올려 놓은 거다. 그리고
그 옆엔 아내가 공부하는 각종 전공 서적들과 노트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후우.. 담배를 한대 피우고 싶다. 그렇지만 피울 수는 없다. 약속한 게 있기에..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 내 아내와 옆방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첫째와 서울에 있는 둘째 아이를 위해
내가 해야할 길.. 과연 갈 수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 다시금 머리가 조여오기 시작한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한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 두렵다. 사실이다. 그렇게 힘든 길.. 그렇게 힘들 길.. 굳센 마음으로 나는 죽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계속돼야 한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뛴다고 해도 왜 이렇게 자꾸만 마음 한 구석이 죄여
오고 왜 자꾸만 나의 웃음과 미소 뒤에는 씁쓸한 회한만 쌓여가는 걸까. 왜 좋아서 웃다가도 금방 슬퍼질까.
 
나는 날고 싶다. 그래 나 역시 다른이들과 똑같이 날고 싶다. 보다 높이 높이 날아올라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 제발.. 날개도 잘 단련시켜 놓았다. 먹이도 충분히 먹었다. 나와 같이 날 내 가족들도 나를 따를
준비가 되어있다. 모든 게 완벽하다. 그래, 이제 날개짓을 하나둘씩 하면서 날아오르면 되겠지.. 근데 왜 날 수
없을까. 왜 도저히 날 수 없을까.. 왜 어째서.. 자꾸만 내 두 다리는 땅을 박차고 오르지 못할까.. 그냥 차기만
하면 되는데.. 땅도 내 두 다리를 맞을 준비가 돼 있고 내 두 다리도 땅을 찰 준비가 돼 있는데.. 내 두 다리가
마비된 것도 아닌데.. 왜 땅을 찰 수 없을까..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잡고 쥐어흔드는 이 대지의 공기는 나를 죄책감과 분노와 슬픔과
배신감과 고통과 절망과 새로운 다짐 속에서 수없이 잡고 흔들었다. 내 몸은 그렇게 흔들려졌다. 과연 무얼까..
과연 그런 건가.. 내 심리는 하루에도 수천번, 아니 수만번 요동을 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왼쪽 가슴 늑골간이 저려온다. 으으 젠장.. 모든 게 싫다.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다.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나의 책임과 나의 의무와 나의 일을 하기 위해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그렇지만 불끈 쥐기가 무섭게 알 수 없는
손이 나의 주먹을 내려버린다. 다시 올린다. 다시 내 손을 잡아 내려버린다. 그 손을 제거하고 싶다. 제거하고
싶다.
 
이 글은 나 혼자만 읽는 글이 아니란 것도 안다. 비공개 포스팅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 글을 읽어주는 어느 누군가가 내 심리와 단 한 부분이라도 교감하는 마음이 있다면 난 그 분과 친구가 되고
싶을 뿐..
 
당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
 
만일 당신이 나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라면 난 더 이상 당신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의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난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원한에 가득찬 얼굴.. 

 

2008/10/28 (화)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