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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nikut on presentation
자아!!! 이제 숙제 끝이다! 다시 놀러 가자!!!
일단 오늘 저녁에는 쇄석기 회사인 Edap에서 주최하는 세느강 유람선 선상 파티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얘기 하고 발표 준비로 바싹 긴장했던 내 목에 매여진 넥타이나 조금 풀자.. 휴우..
[라 데팡스 (La Defense)]
일단 우리 일행이 이 학회에 와서 할 건 다 끝난 셈이다. 저녁에 있을 유람선 일정까지는 아직도 약 3시간 남짓 여유가 있다. 우리 세 일행은 그동안 뭘 할지 생각하다가 학회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라 데팡스에 갔다 오기로 했다.
라 데팡스 (La Defense).. 말처럼 독일(프러시아)과의 전쟁시 최후의 ‘방어’ 요새로 지어진 지구라고 한다. 이 지구가 왜 유명하냐면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이 있는 고풍스러운 파리의 구시가지에 비해 이 곳은 신시가지로 정통적인 유럽풍의 건물들 대신에 마치 시드니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인 빌딩숲이 자리한 곳이다. 파리의 구시가지에서도 개선문 방향으로 바라다보면 유명한 라 데팡스의 빌딩숲들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역시 상당히 몽환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메트로 1호선을 타고 라 데팡스역에 도착. 우리는 모두 정장 차림이란 걸 망각하고 다시금 카메라를 손에 든채 관광객아닌 관광객으로 돌아갔다. 역에서 나오면 곧바로 멀리서 바라만 보던 라 데팡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들과 접할 수 있는데 바로 다름 아닌 ‘신개선문 그랑드 아르슈’이다. 이 라 데팡스역은 마치 지난 번에 도쿄에 갔을 때 다녀온 유리카모메 다이바역을 떠올리게 한다. 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곧바로 공원처럼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광장이 나온다. 상당히 느낌이 유사하다. 라 데팡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되는데 신개선문과 그 오른쪽으로 붉은색의 조형물인 콜더의 ‘스타빌’이 보이고 그 너머로 엘프 빌딩을 비롯한 빌딩 숲이 올려다 보인다. 이런 건축물들이 넓은 광장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가운데로 비둘기떼가 날아다니는 라 데팡스역의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신개선문의 맞은 편으로는 멀리 개선문 및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데 마치 사요 궁전에서 바라보던 에펠탑의 관경과 유사한 명관이다. 우리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라 데팡스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고 시간 관계상 시내 가까이로는 진입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여기서 사진 촬영을 하며 서서히 산책하다 가기로 작정했다.

라 데팡스역 앞 광장에 있는 거대한 신개선문
우리 일행은 자리를 뒤로 옮겨 거대한 신개선문 아래 계단을 올라갔다. 파리에 있는 세 개의 ‘개선문’들 중에 단연 높이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그 문 아래 서 있으니 마리를 쓸어올리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하게 된다. 나는 외투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신개선문 아래를 산책했다. 할 일 없이 심심한 두 명의 프랑스 여자들이 말을 건네며 느끼한 말투로 “Ou, can you speak French? Beautiful man?”이라고 한다. 허걱.. 푸하하 ‘뷰티풀 맨’이라니.. 태어나서 저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근데 이런 상황은 아주 예전에 더블린에 갔었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더블린의 던 리어리 선착장에 도착하여 페리에서 내려 걸어나갈 때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UK & Ireland 편 참고)
암튼 이 곳에서 왔다 갔다 이제 오후가 지난 파리의 봄바람을 쏘이며 산책을 하다가 다시금 메트로를 타고 학회장인 뽀흐뜨 마요역에 도착했다. Edap에서 주최하는 저녁 심포지움이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약 30여분 남았다. 우리는 뽀흐뜨 마요역 가까이 볼로뉴숲 입구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아 봄햇살을 좀 쪼이기로 했다. 이 때 아마 내 얼굴 피부가 다 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썬크림을 준비 안한 게 후회됐다. 파리지엥들, 아니 서양인들은 햇빛을 쪼이는 걸 굉장히 큰 축복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파리 시내에서 노천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없는 식당이란 단연하건대 ‘없다.’ 하다 못해 한두평밖에 안되는 우리나라로 치면 골목앞 오뎅집 내지는 떡볶이집 정도로밖에 안보이는 식당에도 테이블 하나 정도는 반드시 밖에 마련해둔다. 햇빛에 타는 걸 싫어해서 의자를 꼭 쓰고 양산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서양인들은 잘 이해 못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모자 쓰고 다니는 서양 사람들은 잘 못본 것 같다.
지난번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고 회상하고 현재 내가 멀리 서울을 떠나 이 곳에 와 있음을 실감하면서 앞으로의 준비를 하는 잠시 동안의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은 그 여행이 얼마나 달콤한 여행으로 평생 기억에 남는지를 결정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서 기능을 한다. 빈탄의 해안가에서 그랬고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그랬으며 에딘버러의 칼튼 힐이 그러했고 더블린의 템플바에서 그랬다. 지금 여기 볼로뉴 숲 입구의 벤치에 한가롭게 앉은 이 시간들이 또 그러했다. 그렇다. 동적인 여행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사색이란 건 필요한 거다.

학회장 근처의 볼로뉴 숲 입구의 벤치에 앉아 바라본 라 데팡스의 모습

이 곳 벤치에서 바라다 본 EAU 학회장 Palais de Congree의 모습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다시 5시 30분부터 열릴 Edap 주최 심포지움 “전립선암의 HIFU 요법”을 들으러 학회장으로 들어왔다. 영국의 한 여성 물리학 교수가 HIFU의 물리적 법칙을 강의했고 이어서 독일, 프랑스의 비뇨기과 교수가 실질적인 치료 경험을, 이탈리아의 종양내과 교수가 내과적인 관점에 대해 심포지움을 펼쳤다. 바야흐로 소위 ‘유럽 열강’ 4개국의 학자들이 모인 것이다. 심포지움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특히 난 원체 영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여성 물리학자의 강의가 꽤 인상적이었고 특유의 영국식 발음도 아주 듣기가 좋았다.
심포지움이 끝나고 공식적인 오늘의 학회 일정이 다 끝나자 사람들이 학회장 밖으로 우루루 빠져나왔다. 여기서 진풍경이 펼쳐진다. 학회장 밖에는 Edap, Astellas, Pfizer, Sanofi-aventis 등등 여러 제약 회사에서 준비한 버스가 줄을 지어 서있었고 얼굴 반반한 여성 안내 요원들이 각자의 제약 회사의 피켓을 흔들며 버스 앞에 줄지어섰다. 학회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95%는 분명히 ‘의사’들이다. 자기와 친분이 있거나 원래 스폰서를 받고 있는 제약 회사의 피켓 앞으로 우루루 몰려들어 줄을 선다. 피켓을 든 안내 요원이 이 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면 그 뒤를 따라 마치 갓 알을 깨고 나온 오리떼들이 엄마 오리를 따라가 듯이 줄을 지어 이동한다. 근데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교수님들이라 추운 저녁 점퍼를 걸치고 줄을 지어 따라가는 걸 보니 (이런 표현 쓰기 좀 미안하지만) 종로 입구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부랑자들의 줄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어쩔 수 없다. 나도 의사다. 학회장에선 제약 회사를 따라가는 게 최선의 방책인 걸.. 자존심은? 최소한의 품위는…? 글쎄다. Sad but true의 공식이란 그것이 부도덕하지 않은 범위에 한해 어쩔 수 없이 배워가게 되는 게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암튼 우리는 미리 예정된 Edap의 2층 버스에 올라탔다.
[세느강의 진풍경.. 그리고 찬란했던, 잊을 수 없는 유람선의 밤]
버스는 학회장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진입하면서 세느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달렸다. 나는 이 버스 안에서 파리의 서쪽 에펠탑 근방에서 시작하여 시테섬과 뽕네프를 지나 세느강의 동쪽까지 세느강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세느강은 정말 아름답다.
한강의 반의 반도 안되는 강폭에 색깔도 누런 세느강이 뭐가 아름답냐고? 그게 아름답다는 거다. 뭐랄까.. 뭐라고 묘사해야 할까.. 암튼 한강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는 한강변은 어떻게 생겼나? 자전거나 조깅을 위한 산책길이 있고 그 뒤로 잔디밭으로 된 고수부지가 있으며 그 가장자리에는 차도가 있으며 그 밖을 벗어나야 인도가 나오든지 아파트촌이 나오든지 그렇지 않나? 근데 세느강변은? 지금 서울의 청계천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강이 흐르는 바로 옆으로 그냥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그리고 청계천의 양쪽 벽처럼 쌓아올려진 벽이 있고 그 위로 그냥 또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이 느낌은 마치 뭐랄까.. 도시 전체가 아직도 현대적으로 개발되지 않고 옛날 파리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효과를 아주 잘 표현해준다. 근데 더 멋진 건 이게 아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며 바라다 보이는 세느강변에는 이름 모를 여러 건물들이 줄지어있는데 하나같이 전형적인 유럽풍의 건물들이라 언뜻 한 광경을 딱 보면 이게 실사인지 그림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긴 이 세느강변이 그림으로 많이 그려지기는 했지..
또한 그 물결은 어떤가. 참으로 기이하다. 파랗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한강의 모습과는 달리 이상하게 세느강물은 마치 그 속에 알 수 없는 괴물이 요동을 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변의 양쪽 벽을 때리는 듯 물결을 일으키며 역동적으로 흘러간다. 마치 세느강의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바라보다가 저쪽에서 내가 있는 쪽으로 좌우로 요동치며 재빠르게 흘러오는 노란 강물이 해일을 일으키듯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세느강물을 가만히 뚫어져라 바라보면 그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중독적인 묘한 느낌을 준다.

버스에서 바라다본 세느강변의 모습. 저 멀리 파리에서 흔히 보는 커플의 모습도 보인다.
세느강변의 풍경과 그 강물에 취해 정신 못차리고 버스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벌써 버스는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했고 아니나 다를까 유람선 꼭대기에는 Edap 회사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자아~ 우리는 이제 선상 파티에 초대된 거야!”
동기 선배가 탄성을 질렀다.

우리가 탄 유람선의 모습
이 자리는 우리 뿐만 아니라 아까 저녁 심포지움에 참석했던 ‘유럽 4대 열강’의 학자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여러 인사들이 참석하는 아주 성대한 파티이다. 즉 회사 측에서 배를 통째로 빌린 것이다. 자아..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 혹은 책에서만 보던 바로 그 전형적인 유럽풍의 선상 파티에 우리가 오게 된 거다. 정장 수트와 드레스 차림의 신사 숙녀들이 왔다 갔다 하며 담소를 나누고 웨이터들이 샴페인잔을 여러 개 들고 돌아다닌다. 양옆으로 바에서 주방장들이 직접 간단히 안주 거리들을 만들어 꽂아두면 왔다 갔다 하면서 집어 먹는다. 그리고 샴페인은 바에서 무한정 먹을 수도 있고 지나다니는 웨이터들로부터 집어서 마실 수 있다. 자, 나는 지금 말끔한 정장 차림이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달고 있다. 내 왼쪽 손에는 모에 샹동 샴페인잔이 들려있고 나는 지금 배 앞쪽의 난간에 서서 파리와 세느강변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내 옆에는 Edap의 한국지부 젊은 직원이 공손한 말투로 나에게 작은 대접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