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이끼] (2010)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떤 느낌이냐면 약간 불량식품인 줄 알고 좀 허접한지도 알고 먹었지만 되게 맛있었다는 느낌. 그래서 만족했다는 느낌?
리메이크작인 경우 대개 원작을 먼저 접한 사람들은 일종의 특권의식 같은 게 있어서 왠만하지 않는한 '원작만 못하다'라고
판단내리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물론 그런 경향이 있지만, 이 "이끼" 같은 경우는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해서인지 꽤 재미
있게봤다. TV에서 해주는 거 보는데 영화 막판의 하일라이트에서 딸아이가 자다가 오줌 마렵다고 나오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쳐버려서 일부터 올레TV 들어가서 3500원 주고 결제해서 엔딩을 보았을 정도로 이 영화에 꽤나 집중해서 봤고
결말도 만족스러웠으며 보고나서도 여운이 남아 인터넷 서칭을 계속 한 걸 보면 난 이 영화에 만족한 것 맞다.
원작은 보지 않았으나 검색을 통해서 본 바, 대략 어떠한 식이였는지는 알겠는데, 난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에서 바꾼 결말도
꽤 괜찮은 거 아니지 싶다. 물론 사회적 메세지나 원작의 심오함이 없어졌다는 하지만.. 그런 것도 좋지만, 강우석 감독이 만든
반전을 가미한 결말도 '스릴러라는 장르가 주는 오락성'에 비추어본다면 충분히 좋다고 보며, 욕먹을 영화는 분명히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원작을 못본 사람이 보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물론 내가
원작을 봤다면 이 영화는 이 블로그의 이 란에 올라오지 못했을 수 있다. 영화 "이웃사람"이 여기 못 올라오는 이유다.) 단순한
이야기 전개도 아니고 꽤 머리를 써서 퍼즐을 좀 맞추어야 이해가 된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거기서 그게 그럼
어떻게 된거지? 왜 그런 거지? 왜 죽은 거지? 누가 죽인 거지? 뭐 이런 여러 궁금점들을 야기시켜서 맞춰보아야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스릴러 특유의 재미가 좋았다는 것.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인물은 허준호씨가 연기한 유목형이다. 영화 시작부터 중간중간도 그렇고 마지막에 가서
는 더더욱! 내 관심은 오로지 이 유목형이라는 인간에 있었다. 원작에서 어떻게 그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의 핵심
인물은 물론 유선씨가 연기한 이영지라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난 이 유목형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호기심이 많이 든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 사람 선한 사람 맞나? 이 사람의 실체는 뭐였을까? 뭐 이런 점들? 영화가 친절하게 설명
을 안해주기 때문에 꽤 여러 상상들이 가능한데.. 어쩌면 천용덕 이장을 가장 괴롭혔던 괴물같은 존재가 유목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천용덕이 이 영화의 대표적인 악역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유목형이 그보다 더욱 사악한 존재는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해석? 이게 어느 시점에서 누가 꾸민 건지도 약간 불명확한데 유목형-천용덕-이영지 세 사람의 합작품으로도 볼 수
있고.. 이영지가 모든 걸 꾸민 것일 수도, 천용덕이 꾸민 것일 수도, 유목형이 꾸민 것일 수도, 유목형과 천용덕의 합작품일 수도,
유목형과 이영지의 합작품일 수도 있다는 것. 그 각각에 따라 해석이 가능하며 그 각각에 따라 영화의 장면장면을 대입해볼 수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물론 강우석 감독님이 이 모든 것을 계산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물론
다소간의 옥의티나 그런 것들이 있겠지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런 재미가 창출된다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우연히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매력이랄까? 내가 이 영화가 불량식품이지만 맛있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거다.
p.s. 난 그리고 이런 '시골의 음산함' 이런 설정 너무 사랑한다. 예전에 영화 "구타유발자들"처럼, 서글서글한 시골사람들의 공포?
이런 설정 너무 좋음. 진짜.